1.
나는 그를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되었다.
아니,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메모 한 장 남기지 않고 집을 나왔다. 날 동아줄로 묶어놓고 고문하던 내 아이들에게도 아무 대책 없이, 나는 그와 맺었던 모든 시간에서 분연히 떨어져 나왔다.
이건 어폐(語弊)가 있다. 그를 떠난 건 벌써 팔 년 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의 곁에 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 아이들과, 이 사회에서 요지부동한 위치로 군림하는 가정이라는 정신적 공간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굴레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죽어버렸다고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새 내게서 사라져버렸던 나, 서른두 살의 나경남(羅敬男)이 존재해야 한다는 끈질긴 자각 때문이었다.
나는 내 남편에게서, 또 내 아이들에게서도 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먹이고 입히며 거두는 그들에게서 나라는 존재의 그림자도 엿볼 수 없음을 느끼면서 절망했다. 그건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마치 차츰차츰 졸아드는 카바이드 불빛처럼 어둠 속으로 쳐 박아갔다. 아이들이 곧 나라는 그런 깊은 애정을 그들에게 지닐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존재했고 나는 나대로 그들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내가 볼 수 있었던 존재는 나 하나에 불과했다.
한때는 나도 남편을 사랑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많은 사람 속에서 부끄러움을 아랑곳없이 그와 손을 잡고 걸었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원했다.
내가 사랑한다고 믿어야 하는 그를 느끼기 위해서 그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기도 했다.
누구일까, 누가 그리 분노하여 그를 찾을까.
어젯밤 격한 전화에 이어 오늘은 격한 숨소리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쌍년아, 너 말고 네 남편말이야!’
세상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무슨 일일까, 아니 무슨 일인지 알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아이들 저녁을 차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층층이 갇혀 사는 아파트는 어느 날 커다란 트럭에 실려 가던 닭장을 본 기억을 되살렸다. 닭들은 하나같이 밖을 항해 머리를 빼고 있었다. 살기를 포기한 듯 웅크린 몸뚱이에서 깃털이 풀풀 날리고, 그 차를 따라가는 내내 나는 가슴이 옥죄었다.
남편을 향해 걸려 오는 잦은 전화들은 의아함과 함께 불쾌감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밝히지 않고 내 목소리를 듣고는 뚝 끊는 전화, 어름거리다 끊는 전화, 남편을 바꿔 달라고 당돌하게 청하는 전화, 질투에 앞서 모욕감이 전신을 휩쌌다. 그렇게 모두 비열해야 할까.
나는 전화국으로 갔다.
전화번호 재신청을 했다.
내 이름‘나경남’으로 한 것은 물론이다.
이제부터는 내게 걸려 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슬며시 웃음이 다 났다. 습관적으로 남편 이름을 썼던, 잘못 쓴 용지가 내 발밑에 구겨져 밟혔다.
남편이 알고 있는 여자들이란 대개는, 술집 여자들이었다.
술, 술은 그에게 인생의 낙이었다.
새벽녁 떠들썩하게 귀가하는 그를 어떻게 감추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내게 그는 군주처럼 소리쳤다.
‘문 열어! 빨리 안 열어!’
‘야! 구두 벗겨! 하늘같은 남편이 왔는데 뭐 하는 거야, 씨팔!’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빰을 한 대 때렸다.
무슨 짓이었을까. 그에게 어떤 애증의 감정이 남아 있었을까. 아니 그 소란스러움을 견딜 수 없었다. 내게 일어나는 모멸감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이 년이!’
그는 내 머리채를 끌고 비칠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온갖 욕설과 구타가 내 몸을 디굴디굴 굴렸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도저히 현실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지금은 기억조차 드문드문한 끔찍한 순간이었다. 나는 마치 짐승이 포효하듯 길고 긴 절규를 내지르며 의식을 잃었다.
공포와 증오가 막을 수 없는 봇물 터지듯 내 혼을 송두리째 잡아 뽑았다.
그것이 나였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온몸의 기운이 쑥 빠진 탈진함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그는 술이 완전히 깬 듯 얼이 빠진 표정으로 날 들여다보았다.
‘여보, 괜찮어?’
괜찮냐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는 뜨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이들은 내가 죽기라도 했던 것처럼 질린 얼굴에 눈물을 번질거렸다.
그는 날 안아다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이들을 제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곧 코를 골며 잠들었다.
방안에는 고약한 썩은 냄새가 번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여기저기 살점이 아프기 시작했다. 찢기고 또 찢겨 하늘거리는 문창호지처럼 바람이 들이쳤다. 나는 비칠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내게 밖은 어디일까,
내게 주어진 역할의 밖은, 내가 믿었던 아름답고 존엄한 삶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문을 열었다.
내 앞을 막고 있는 또 하나의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꺼억거리며 솟구치는 내 삶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가정에 존립시킬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외면하면 할수록 나는 뜨겁게 열망했다.
용서와 인내, 그것은 그에게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나 적어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내게는 수모였으며 착취였다. 나는 그의 가정부이자 셈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살받이었으며 그에 소속된 재산의 일부였다.
그는 자유롭게 술집을 떠다니며 마음껏 젊음을 탕진했다. 그래, 비지니스였다. 나는 알 수 없는, 처자식을 벌어먹이는 위대한 과업이었다. 그래도 그의 가정은 멀쩡했다. 그가 문짝을 걷어차고 들어오는 집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심지어 아름다운 꽃까지 꽂혀 그를 맞아들였다.
‘당신에게 소중한 건 뭐지요? 왜 늘 그렇게 취해서 돌아와요?’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내 질문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대답하기 싫었을까, 그는 못 들은 척 버럭버럭 소리 질러 아이들을 불러댈 뿐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그를 거부하는지 그들의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가 돌보지 않는 아이들.
큰아이가 며칠 전부터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나는 그 아일 놓고 따지는 게 싫다. 남편에게 따지기 싫듯이.
‘친구 집에서 공부했어요.’ 그건 사실일 것이다.
나는 남편의 얼굴과 아이의 얼굴을 혼동한다. 둘은 아주 흡사해서 순간순간 날 놀라게 한다. 곁눈질할 때의 표정, 왠지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슬쩍 스치는 미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치켜 올라가는 눈썹의 각도,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육식을 즐기는 식성과 유명메이커의 상품을 선호하는 허영심, 스포츠를 열광하는 단순함까지 일치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싫어한다. 어쩜 서로를 통해서 확인되는 단점들이 싫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무식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 요즈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다는 유행하는 것들을 나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것들을 외면해 왔다.
한편 그들은, 아내인 나에 대해서, 어미인 나에 대해서 무식하다.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것들은 저절로 알아야 하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들 앞에서 말하지 않는다.
실제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내 부모의 무능함은, 아니 그 무능함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일 테니 굳이 내 부모를 탓할 것도 못 된다. 그들은 내게 남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항의? 그것을 어찌 항의할 수 있겠는가. 내게 부모 형제는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애정이어야 했고 동시에 자아의식의 거세(去勢)였으며 침묵으로 깊어간 좌절이었다.
내 아들의 가정환경 조사서에 써넣은 대졸은 남편이 거짓으로 써넣은 것이다. 나는 그때도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거짓말을 해요.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요. 말하려는 나를 그는 엄한 눈빛으로 제지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정환경 조사서를 들고 가는 아들의 뒷통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와 연결된 내 생활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시종일관 거짓으로 꾸며져 그의 구미대로 요리됐다. 그에게 있어 나는 어느새 재벌회사의 부장님 사모님이 갖추어야 하는 모든 구색을 부족함 없이 갖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참석해야 하는 부부 동반 모임에 성장하고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안 가던 미장원에 들리고 그가 외국 출장 갔다 올 때 사다 준 귀금속을 몇 번이나 망설이다 하고 나갔지만 결국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촌스럽기는...’
나는 당연히 촌스러워야 하지 않겠는가. 촌에서 이십여 년을 살은 나로서는 촌스러운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음 편한 일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그에게 걸맞는 세련된 여성들이 반짝이는 웃음을 보내며 맴돌았다.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한 곳에 조용히 있었다. 몇 사람이 친절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으나 나는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그들의 구김살 하나 없이 매끄럽고 화려한 복장과 윤기 나는 얼굴에 시종일관 떠나지 않는 미소와 그 우아하고 느릿한 걸음걸이를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파티라는 모임이 생리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낯선 것이었으므로 그 이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참석을 피해 왔다.
남편은 투덜댔지만 강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내 느낌에 의하면.
그는 일찍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몸이 안 좋을 때를 빼고는.
외출하지 않는 일요일은, 그가 잠을 자야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그를 유혹해 보려고 갖은 애를 썼으나 허사인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그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을 모색하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나와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이 집에 있을 때 그들을 벗해주는 것은 T·V와 컴퓨터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부족하지 않게 사준 책들은 거의 읽히지 않은 채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면서 그들의 또래 집단을 형성해 몰려다녔다. 그는 아이들의 성적표를 확인하는 일로 만족했다.
그가 코를 골고 잠자는 시간, 나는 불면으로 시달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가만히 빠져나와 어두운 밖을 주시하며 앉아있곤 했다. 나는 그렇게 앉아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새벽은 신비스럽게 밝아왔다. 나는 그렇게 확연하지 않은 가운데 조금씩 다가오는 밝음을 보면서 마치 덕지덕지 껴입은 누더기가 하나하나 벗겨지는 듯 가벼움을 맛보았다.
안개라도 낀 날은, 마치 수줍은 듯 드러나는 히끄무레한 정경(情景)은 설레일 만큼 아름다웠고 막연하게나마 신의 존재를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금은 안정되어 차가운 몸을 침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날 그는 갑자기 느껴지는 냉기에 잠을 깬다. 그리고 사정(射精)하기 위한 발기를 힘차게 하며 날 껴안는다.
나는 뿌리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내가 그의 아내인 것을 상기시킨다. 내가 믿고 싶었던 살섞음의 의미는 사라진 채, 나는 뜨거운 모래밭을 걷는 낙타처럼 그를 받아들인다.
그를 나와 함께 묶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절대로 함께 묶여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그에게 점차 편안해져 갔다.
어느 날 저녁, 포만감과 함께 부자가 TV 앞에 바짝 다가 앉아있고 나는 읽던 책을 접고 마악 잠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한번, 잠시 후 다시 한번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의아한 나는 조심스레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반지 구멍만 한 유리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웬 젊은 여자애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누구세요?’
나는 금방 내 질문이 어리석음을 깨달으며 문을 열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내 뒤에 선 남편에게로 시선을 올렸다.
눈물이 그렁한 그녀는 작게 부르짖었다.
‘현규씨!’
나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마치 온몸으로 그를 부르는 듯 그녀의 애원 어린 몸짓은, 그들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나를 실어가 버렸다.
‘들어오세요.’
나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이 필요한 시간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파랗게 고른 불꽃이 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분명 내가 누리고픈 자유에 근접하고 있는 것 일 게다. 그런데 나는 무슨 이유인지 떨고 있었다. 찻잔에 커피 가루며 설탕이 흩어져 쏟아졌다. 다시 새 찻잔을 꺼냈다. 차반을 들고 가는 동안 커피는 흥건하게 쏟아져 있었다. 두 잔 다 그 모양이었다.
남편은 이미 평정을 찾고 자기네 거래회사 미스리라며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들린 거라고 시침을 떼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짓으로 단단히 무장한 그의 안색은 그토록 뻔뻔함에도 불구하고 창백했다.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안 돼!’
남편은 벌떡 일어나며 그녀를 잡아 일으켰다. 순간 그녀의 겁에 질린 얼굴은 내게 용기를 솟구치게 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남편을 떠다밀었다. 예상치 않았던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그는 저항할 새 없이 나가 자빠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같이 뛰었다.
나는 털썩 주저앉으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
환한 달이 그녀의 눈물 젖은 작은 얼굴 뒤에 덩그렇게 떠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저만치 내가 갇혀 사는 아파트가 거대한 귀신처럼 버티고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이 밤중에 잠자지 않고 날아가는 새무리. 그 날개짓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고개를 떨구며 그녀는 흐느꼈다.
‘아니,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요. 사실대로.’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숙인 고개를 들게 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요?’
그녀는 자꾸 울고 있었다.
아, 나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울지 말아요. 댁을 도우려는 거예요. 그러니 얘길 해봐요.’
‘아길 가졌어요. 집에서 그 사실을 알고......’
그녀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또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울음에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가 가엾다는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나 나는 그녀에게서 빨리 놓여나고 싶었다.
‘그를 원하지요? 그가 아가씨를 사랑한다고 믿으니까.’
‘네. 그렇지만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요. 미칠 것만 같아요.’
미칠 것만 같다고?
나는 그녀의 잘 화장한 검은 눈이 더러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점점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 수 있겠어요? 우리 집에 들어와서.’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놀라는 듯 쳐다보았다.
나는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제든 준비가 되면 다시 와요. 내 자릴 내 줄 테니. 됐어요?’
나는 일어서며 뛰어온 거리를 다시 천천히 되돌아갔다.
어딜 갈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환한 달빛이 비치고 새가 날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는 건 싫은 일이다.
주위를 돌아보던 나는 놀이터 그네에 올라앉아 조금씩 힘을 주어 그네를 굴렸다.
아주 조그만 꼬마였을 때부터 나는 겁도 없이 그네를 잘 뛰어 아이들을 놀라게 했었다. 높이 오를 때 그 자신감, 순식간에 떨어지는 아찔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네타기를 즐겼었다.
점점 더 힘껏 굴렀다. 까닥하면 뒤로 엉덩이가 빠질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 그네니까 줄이 끊어질지도 모르겠다.
내 몸뚱이가 저 달빛을 뚫고 멀리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새처럼...... 새처럼......
나는 가슴속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는 것을 의식했다.
매일매일 가득한 절망을 제치고, 한줄기 솟아오르는 강렬한 것.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막을 수 없는 물줄기처럼 나를 적시는 그것은 분명 더는 누를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나의 젊음으로 인한 욕망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은 모두가 이야기하듯 이상(理想)에 불과한 것이지 현실과는 상관없는 것들인가.
내가 꿈꾸었던 자유로움과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순결한 사랑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결혼과 함께 주어지리라 생각했던 따뜻한 가정, 믿음직한 남편, 나의 분신일 사랑스런 아이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기에 나는 이처럼 쓸쓸한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는가.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울어야 하는 일은 진정 무엇일까. 이 눈물은 무엇에 연유한 슬픔일까. 이 혼란을 어찌할까.
달빛 가득한 아름다운 밤은 지나치게 적막했다.
나는 여전히 밥을 지어 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냈다.
그는 말없이 출근했고 곤드레 취해서 늦은 밤에 귀가했다.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모르듯이 나 또한 그의 사과 따위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이 조용한 침묵이 어떻게 깨어질지 기다리면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과, 또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딸아이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악보는 복잡하고 어려워 보였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단 한 대밖에 없던 피아노를 연주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서울서 전학 온 그 아인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처럼 화사했다. 우린 부러운 시선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막연히 그 아인 우리와는 다른 존재, 다른 세계 속의 인간이라고 느꼈었다.
모든 선생님이 그 아이 앞에서는 미소를 지으셨다.
나도 그 아이 앞에서는 저절로 미소 지었다. 그 아인 예뻤다. 하얀 얼굴에 레이스 달린 짧은 원피스의 리본이 풀어져 나풀나풀 날리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다. 나는 그 아일 보면서 따스한 봄, 노란 나비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물려받고 또 물려받아 낡고 작아진 남루한 옷은 그때부터 부끄러운 것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아인 날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날 좋아한 이유는 내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그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처럼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방과 후 그 아인 자주 자기 집에 놀러가길 청했다. 그러나 나는 집에 돌아가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청하는 대로 자주 갈 수 없었다. 아주 가끔 그 아이 집에 가면 행복했다.
마당을 들어서면서 풍기던 라일락 향기.
시골집 마당에 흔히 있는 감나무나 대추나무, 살구나무 등이 얼마나 보기 좋은 것인지 알게 된 것은 고향을 떠나고 나서였으니 그때 흐드러지게 피어 곱던 보랏빛 라일락꽃은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 피었던 여러 가지 작은 꽃들은 또 얼마나 예뻤는지, 나는 아직도 그 아름다웠던 붉은 벽돌집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아이의 엄마는 볕에 그을리고 가난에 찌들어 늘 힘들던 우리들의 엄마와는 너무도 달랐다. 우리를 보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맞아들여 맛있는 것들을 차려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그 집에 가고 싶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눈에 그 엄마는 천사 이상이었다. 단정하고 고운 옷을 입고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나는 홀린 듯 오랫동안 쳐다보곤 했었다. 그리고 모르는 새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 있기를 막연히 기대했었다.
나도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
아이들이 배우러 가는 피아노 교습소엘 가는 일이 낯 뜨겁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나는 공부도 하고 싶다. 그래서 대학을 가보고 싶다.
이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할 수 있을까?
나는 시골 고등학교지만 전교 일 등으로 졸업했다. 그때 담임이었던 수학 선생님은 당신이 입학금을 대 줄 테니 대학에 진학하라고 간곡히 말씀하셨다. 나는 며칠 밤을 울었다. 등록금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졸업하면 대처에 나가 돈을 벌어서 남동생을 공부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는 부모 이상으로 나는 내 동생들을 사랑해야 했다.
남동생에게 무엇이든지 양보해야 하는 것을 익혀온 오랜 습성이었다.
나는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 모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서울 교외에 있는 사장의 전원주택은 이층 양옥에 마당이 넓고 나무도 많아 쾌적했다. 고용인들이 사용하는 뒷마당의 별채였지만 여덟 자짜리 작은 내 방은 분에 넘치는 공간이었다.
사정이 딱했던 내게 선처한 사장의 특별 배려였다. 그것은 교장 선생님의 각별한 부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첫 월급을 타서 교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께 내의를 사다 드렸다. 그리고 그분들의 애정 어린 따뜻한 웃음은 그간의 내 어려움을 모두 보상해 주었다. 험하다는 서울 생활을 이렇게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집에 산다는 이유로 종종 사장의 승용차를 얻어 타지 않을 수 없었다.
점잖은 교장 선생님의 친구인 사장이었으나 한 번은 떨어져 앉아있는 내게 다가앉았다. 그의 뜨거운 손이 내 손을 싸쥐면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싫은 것을 참아야 하는 법을 오래 익힌 가난한 집의 맏딸답게 창밖을 내다보며 묵묵히 있었다. 손을 잡히는 정도는 참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반응 없음이 그를 긴장시켰는지 그는 잠시 후 슬며시 잡았던 손을 거두고 정신 차리려는 듯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회사생활은 지루했다.
그 단순한 유희적 노동은 내게 점점 권태를 몰고 왔다.
집 근처 어두워진 숲을 정신없이 쏘다니며 허기에 지칠 때 나는 살아있는 나의 존재의 무료함을 느끼며 때론 눈물을 흘렸다.
나를 지탱해준 유일한 것은 책이었다. 무엇을 배울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모양을 내고 구경 다니고 남자를 만나고 하는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쉬는 날이면 도서관이나 고궁을 찾아갔다. 물론 가는 곳마다 사내들이 있었다. 젊음은 곧 유혹인 듯 몇몇은 내게 시간을 내주길 부탁하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는 내 사정은 그들에게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얼마나 그들의 유혹에 나를 맡기고 싶었던가. 그러나 나는 두려워서 그들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의 무료함과 빈곤을 대가로 그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웅크린 벌레처럼 작은방에서 날이 샐 때까지 책을 읽다 잠들곤 했다.
이제라도 내가 힘들어도 도전해야 하는 일은 다시 공부하는 일이다.
2.
남편이 나흘간 출장을 간다며 가방을 챙겼다.
나는 잠자코 여느 때처럼 그에게 필요할 것들을 꺼내놓았다.
“새거 줘”
그는 몇 번 신은 적이 있는 양말을 휙 던졌다.
그가 출장을 갈 때는 늘 포장지도 뜯지 않은 새 속옷과 양말이 준비돼 있어야 했다. 난 그 사실을 요 며칠 잊고 있었다.
“새것이 없어요.”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는 화가 난 듯 거칠게 가방을 잠그고는 아이들에게조차 인사를 하지 않고 나갔다.
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흰나비들의 무수한 날갯짓처럼 어느새 창문 가득 목련이 피어 있었다.
봄이구나.
나는 밖으로 튀어 나갔다.
따뜻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존재하는 것은 흰 목련꽃만이 아니었다. 막 피어나는 여리디 연한 색의 벚꽃, 담장 가득 쏟아지는 노란 개나리, 파랗게 돋는 새싹들, 새싹들.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다 문득 이러한 세상을 거리낌 없이 볼 수 있는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여 집으로 서둘러 들어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나는 급하게 파출부안내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엄마는 며칠 여행을 떠난다.
파출부 아줌마가 오셔서 집안일을 해 주실 거야.
잘 지내고 있어. 전화할게.’
나는 결혼 후 처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진정 나만을 위한 여행을 하려는 자신에게 강한 설레임과 함께 약간의 망설임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을 느끼고 가방 속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넣었다.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두려움을 밀어내지 못하고 결국 날 주저앉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까. 그것도 생각할 수 없다. 망설임은 내 발목을 붙잡고 다시 날 대형 새장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자유인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은 새롭게 인식되어 날 기쁘게 해야 한다.
역은 오전임에도 부산했다.
밀려 나가고 밀려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비슷비슷한 얼굴들, 그들 중 누구라도 좋으니 나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내 일상에 반역하고 있는 진정한 나의 존재에 대해서.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푸르름이 갑자기 가슴을 채우는 듯 나는 긴 심호흡을 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이토록 아름다운 산천이었나 놀라왔다.
막 물이 올라 포릇포릇한 산하!
군데군데 분홍진달래가 지천이었다.
시골집 담장을 끼고 도는 노란 꽃 무덤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 섰는 아이들. 잔잔한 흥분이 가슴을 적시며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봄을 보면서, 나는 땅끝 해남까지 달리며 울음을 삼켰다.
사랑할 수 없는 사내와의 오랜 동거가 슬펐다.
두 아이의 행복하지 못한 어미인 것이 슬펐다.
그물에 갇혀 박차고 오르지 못해 버둥거리는 새처럼 울었다.
경희는 앓고 있은지 오래였다.
그녀에게서 소식이 끊긴 게 몇 년인가.
내가 그녀에게 편지를 한 것도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알리지 않았느냐는 내 울먹이는 비난에 경희는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벌을 받는 거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죽고 싶어.”
“벌이라니, 무슨 그런 소릴, 죽다니!’
경희의 몸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여위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걸까,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하러 갔다 한 게 몇 년 전인가.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슴 위로만 살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처참했다. 감각이 없는 듯한 가느다란 두 다리는 끈으로 묶여 있었고 두 손은 가지런히 포개어 얌전히 놓여진 채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매력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졌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고이는 눈물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모든 사고를 멈춘 듯 망연한 표정으로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경희의 작고 연약한 부름에 멈칫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경희는 그 모양을 보고 다시금 옅은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우리 엄마가 더 딱해. 온전한 정신이 아니셔. 어떻게 연락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왔어?”
“아무 일도 아니야. 애들 아빠가 며칠 출장을 갔어. 그래서... 애들은 봐주는 아줌마가 있어.”
나는 그녀가 염려할까 봐 미리 서둘러 말했다. 그러나 사실 널 보러 온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경희는 쾡하게 꺼진 눈으로 찬찬히 날 주시했다.
그 눈빛은 발가벗기듯 내 몸을 훒고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경희의 메마른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며 자조하는 듯 쓸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반찬이 없다며 미안해하는 저녁을 먹고 한사코 말리는 설거지를 한 후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경희를 안아 휠체어에 앉히는 것을 보며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두운데 나가지 말라는 어머니 말을 안 듣고 그녀는 밤바다가 아름답다며 나가자고 했다. 그녀의 어린 딸이 커다란 손전등을 들고 따라나섰다.
아직은 좀 찬 밤기운이 그녀에게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앞장서서 걷는 딸아이의 흰 원피스 자락이 나풀나풀 날렸다.
어릴 적 경희를 빼다 박은 듯 살결이 희고 예쁜 아이였다.
어둠 속에 깜박거리는 불빛을 말없이 바라보며 한참을 나갔다.
수많은 삶이 반짝거리며 드넓은 바다를 수놓았다.
파도 소리가 조금씩 일렁거리며 들려왔다.
“그를 그렇게 빼앗는 게 아니었어. 결국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우리 모두의 희생이 너무 컸어. 경남아, 미안해. 날 용서해 줘.”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그는 널 사랑했어. 잘 알잖아.”
나는 밀던 휠체어를 멈추었다.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에 비해서 내 목소리는 너무 컸다.
경희는 변했다. 그녀의 오만함은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영민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그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와 겨룰 수 없었다. 절대로 공정할 수 없는 우리들의 관계인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란히 서울의 유명 대학에 들어가고 나는 회사원이 되었을 때 영민에게 지녔던 무거운 감정을 모두 지우기 위해 될 수 있으면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
영민이 군에 입대한다며 날 찾아온 날.
그는 취했었다. 나는 밤이었지만 익숙한 산길을 말없이 걸었다.
그는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자코 어두운 숲을 바라보았다. 그는 픽 웃으며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가 내게 불편해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도 경희가 전학해오고 선생님이 경희를 그와 짝해 준 다음부터인지 모른다.
나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던 그를 슬며시 경희에게 양보 아닌 양보를 하게 되었다.
영민은 뒤에서 날 안았다.
‘널 사랑해. 언제나 널 좋아했어.’
그의 술 내음이 목덜미를 뜨겁게 애무했다.
아! 나는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를 원하지 않았다.
이미 경희가 얼마나 그를 원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희에게는 그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는 방황하며 빗나가는 경희를 잡아주어야 했다.
언젠가 경희는 내게 자신의 불행한 삶을 이야기했었다.
대학교 때 그녀의 오빠라며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으시단다. 그녀는 한마디의 질문도, 또 어떤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어떤 이유이든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배신감이 꿈틀거리며 혼란스러운 두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희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와 그 가족들에 둘러싸여 경희는 자신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느껴야 했으며 자랑스럽던 어머니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늙고 병든 아버지의 임종은 평온했으나 딸이 치룬 대가는 평온치 않았다.
경희는 집을 나와 휴학했다. 그녀의 어머니와의 모든 접촉을 피했다.
나는 경희의 풍요롭고 자신만만했던 삶이 일그러지는 모습과 함께 그녀와 묶어지는 영민을 느꼈다.
“내가 빼앗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가 널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걸 인정하기 싫은 내 자만심이, 결국은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어. 날 사랑해야만 하는 그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어. 이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착한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그땐 이미 늦어버린 거야.”
경희의 입가에 계속되는 작은 경련이 날 불안하게 했다.
이제는 소용없는 낡아버린 과거를 말하느라 애쓰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부여하는 날 견딜 수 없어서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어. 질투하고, 고독과 좌절 속에 끊임없이 그를 희생시키면서 나는 나대로 지쳐갔어. 몇 번씩 자살을 시도했어. 그러나 내가 깨달아야 하는 삶의 고통은 질기게도 날 붙들고 놔주지 않았어.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점에서, 모든 애착을 버린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결국 못된 나 자신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지. 그리고서야 알게 된 거야. 내 괴로움의 실체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나는 그녀의 앙상한 어깨를 싸안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젠 편안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뻐. 죽기 전에, 아니 조만간에 꼭 널 만나고 싶었어. 네가 이렇게 와 주다니, 이건 우연한 일이 아니야.”
경희의 손이 너무나 싸늘해서 나는 서둘러 휠체어를 밀며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밤바다에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을 향해 연신 작은 돌을 집어 던지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경희의 어린 딸과 함께 바닷가로 나갔다.
새까만 자갈들이 고운 해안을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벌써 멀리 배들이 다시 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진정한 행복을 지닌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이 평화로운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자연과 함께 사는 저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맑고 푸른 하늘, 끝없이 넓은 바다, 꽃피어 아름다운 마을을 나는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노란 유자가 주렁주렁 열려 마치 성서에나 나오는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는 동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반짝반짝 빛나는 잎사귀들 속에 탐스러운 유자, 발그레 상기된 아이의 우유빛 고운 얼굴이 짓는 환한 미소.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들을 그대로 캔버스에 정지시키고 싶었다.
“아줌마, 우리 아빠 오시면 준다고 할머니가 유자술을 담궜어요. 유자차도 있어요.”
“아빠? 아빠가 언제 오셔?”
“지난번 내 생일에 오셨었어요. 이 옷도 아빠가 사다 주신 거예요.”
아이는 생글거리며 한 바퀴 돌아 보였다. 이 아이는 정말 경희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경희가 아버지가 없음에도 충분히 발랄했던 것처럼 어린 딸 역시 오랫동안 병든 어미와 상관없이 귀엽고 명랑했다.
영민은 아이를 보면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경희를 느꼈을 것이다. 그와 나와의 인연은 얼마나 연약한 것에 불과한지 알았을 것이다.
그가 군에 입대하고 내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답장은 경희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제대하던 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내가 다니던 회사 사원이었다. 그의 업무능력은 뛰어났었다. 그는 자주 사장실을 드나들었고 날 눈여겨보곤 했다. 그를 좋아했던 다른 여사원들을 마다하고 그는 내게 집요하게 접근하며 관심을 보였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내게 보여주는 호의에 차츰 마음을 열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옛말처럼.
그가 내게 청혼했을 때 나는 아직은 결혼할 수 없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흔쾌히 학업이 끝나지 않은 친정 동생의 학비 보조를 해줄 것을 약속했다.
내게 있어 결혼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부모가 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떤 희생을 치루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나이에 생각할 수 있는 현실이란 얼마나 제한된 것에 불과했는지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은 너무 무지할 만큼 현실에 눈 어두웠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 자를 가지고 타인을 잰 것이다.
내가 결혼한 다음 해에 영민과 경희는 결혼했다.
영민의 집에서는 대단한 반대를 했다지만 영민은 그녀를 선택했다.
나는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 이후 나는 영민을 보지 못했다.
아침상을 물리고 경희가 아이를 교육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누워서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그녀의 눈빛이나 얼굴표정 만으로도 해야 할 학습을 영리하게 할 줄 알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고 물으니 아빠가 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가시고 엄마와 함께 공부한 지 오래되어서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이미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경희는 습관성 유산을 거듭한 끝에 간신히 이 아일 낳았다. 그리고 몇 년 후 하반신 마비가 시작되었다. 해가 갈수록 악화되는 이 병을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확한 원인조차 밝히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었다. 그중에는 중절에 의한 자율신경 손상도 들어있었다.
경희는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일에 지쳐 서울대학병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고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희의 말에 의하면 지옥에 가서만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죄값을 치룬다 말했다. 경희는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부모의 죄, 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조상의 죄까지 사죄했다.
나는 물론 경희의 말을 모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겁게 가라앉는 침울함을 떨칠 수 없어 다시 바다로 나갔다.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그만 감당할 수 없는 경희를 떠나고 싶었다.
내가 누리고 싶었던 며칠간의 자유는 나로서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경희를 보면서 그 의미를 잃고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서도 존재하는 암담함이었다. 나는 더욱 가슴이 짓눌리는 것을 느꼈다.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나를 경희는 성급한 눈길로 말렸다.
“경남아, 하루만 더 있다 가. 부탁이 있어. 그가 오늘 올 거야.”
난 영민을 보고 싶지 않다. 아니 내 그리움의 실체는 어쩌면 영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영민을 대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영원히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 두려운 일은 아예 벌이고 싶지 않다.
“미안해,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아. 그러나 희망을 버리진 마. 그건 삶 이상의 의미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그냥 갈게.”
나는 어떤 말도 위안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미안했다.
“경남아,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내 간절한 부탁이야. 내일 가.”
나는 그녀의 마지막이라는 언질에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처럼 가뿐한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고 방파제 끝까지 갈 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잔잔한 코발트색 바다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물결에 반짝거렸다.
아직도 이렇게 조용한 세상이 있었구나. 마치 딴 세상인 양.
“난 슬아를 낳은 이후로 그와 육체관계를 하지 못했어. 그는 지성으로 내 몸을 염려하며 간호했지. 그러나 때론 죽더라도 그와 한 몸이 되고 싶었어. 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그를 괴롭혔어. 그에게는 내가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가 있었어. 아니야, 나를 참을 수 없어서 내게 화라고는 내지 않는 그를 보는 일이 너무 괴로워서, 그 밖에도 참 많은 이유로 그를 괴롭혔어. 지치고 지쳐서야 그가 나와는 퍽 다른 인간인 것을 알게 되었어. 나는 그를 사랑해. 진정으로 사랑해.”
경희의 작은 목소리는 어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무릎을 싸안고 멀리 지평선 너머로 조금씩 작은 배가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부탁은 오직 날 위해서야.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말고 들어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꼭 너야 해.”
나는 꼭 너야 한다는 말에 황급히 시선을 거두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가 널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넌 냉담했지. 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결혼해버리고, 나는 정말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회의했어. 그는 내가 다른 남자와 동거했던 일을 알아. 그 남자의 아일 지우고 울던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어.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를 필요로 한 거야. 네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그에게 내보였다면, 네가 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면, 그는 너와 결혼했을 거야.”
그랬을까. 나는 그와 결혼하길 바라지 않았다.
경희의 생각은 지나치게 주관적이었다. 그간의 고통스러웠을 생활이 그녀로 하여금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경희야, 꼭 그렇지는 않아.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어.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그는 정말 좋은 남자야. 내게는 분에 넘치는 남자라는 것을 잘 알잖아. 그는 네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야. 네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에게는 또 하나의 어린 경희가 예쁘게 자라고 있잖아.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돼.”
“경남아, 나는 얼마 살지 못해. 그걸 내가 알아. 죽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하고 싶어. 그를 단 한 순간일지라도 정말 기쁘게 하고 싶어. 날 도와줘.”
무엇을 어떻게 도와달란 말인가. 이 목숨을 빌미로 애원하는 친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가.
“그를 사랑해 줘.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네 심신을 다하여 그를 안아줘. 네 남편을 핑계 대지 마. 도덕성을 운운하지도 마. 그런 것들은 내 꺼져가는 목숨 앞에서 의미가 없어. 그가 날 안은 듯 널 안게 해 줘.”
‘부탁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네가....’
나는 숨을 멈춘 듯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검은 우물처럼 깊은 눈빛이 조용히 내 놀란 눈을 덮었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너는 얼마나 더 나를 시험하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었다. 네가 나에 대해서 다 안다 해도, 너는 내가 안간힘으로 지키고자 애쓰며 살아온 내 자존심이 얼마나 많이 상처 입었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널 배신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를 배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게 뭘 의미하는지 넌 생각이나 해보았느냐.
“넌 우릴 사랑했어. 날 위해서 그리고 그를 위해서, 네가 해줄 수 있는 일이야.”
경희는 다짐하듯 다시 한번 말했다.
그를 제쳐놓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소용돌이치듯 꿈틀거리며 날 거역하려는 서글픈 욕망에 휘둘렸다. 그러나 나는 서둘러 일어섰다. 그녀의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꺼져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메마른 몸을 안았다.
너무 슬퍼서 도망치듯 부두를 향해 뛰어갔다.
멀리 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경희가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말처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그녀의 망가진 몸이 어릴 적 나비 같았던 모습을 지우고 나의 뇌리에 박혀 언제까지나 나를 슬프게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내려오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배에 올랐다.
그때였다.
“경남아!”
내려가던 사람들 속에서 영민이 뛰어나왔다.
나는 대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아! 참, 그가 온다고 했지. 나는 잠깐 잊고 있었다.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서둘러 일어났는데,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머지 이곳의 교통수단인 배가 하루에 한 번 밖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안으로 안으로 숨듯이 들어갔다.
그는 숨 가쁘게 쫓아 왔다.
그가 내 팔을 붙들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경희의 말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아야 했다.
그의 모습은 좀 더 성숙해 보였다. 파릇한 구렛나루는 거뭇거뭇 수염이 돋고 전보다 약간 야윈 얼굴 침착한 눈빛에 물기가 어렸다.
우린 잠시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나는 그에 이끌려 선실 밖 난간으로 나왔다.
“배가 곧 떠날 거야. 빨리 내려야 해.”
그는 말하는 날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온통 젖고 있는 것 같아 가슴에 예리한 통증이 느껴지고 나는 그의 품에 쓰러져 울고 싶었다.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가 내리지 않을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예상치 않았던 일들로 혼란함과 함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를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어떤 남자도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를 사랑했지만 늘 그의 곁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지금도 그의 곁에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십 년 넘는 세월은 침묵으로 우리의 마음속을 넘나들었다.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를 뿌리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강하게 붙드는 자신을 느껴야 했다.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외로웠다.
범해서는 안 될 그일지라도 나는 더 이상 그에게서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떨리는 가슴에 머릴 묻고 울음을 참고 또 참았다.
오랫동안 갇혀있던 남성을 활짝 열고 나를 부서질 듯 껴안았다.
나는 내 육체의 모든 세포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를 반역하는 것을 보았다. 전신을 흐르는 격렬한 전율이 내 몸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것 같았다.
내 구차한 삶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상처받으며 무겁게 닫혔던 사랑이 문을 열었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내 영혼의 충만한 희열 속에 몸을 맡기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경희는 우릴 구하고 싶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변함없는 자만심이 스스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민에게 경희가 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영민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린 그날 밤 현실로 돌아올 수 없었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왔다.
내 지친 육체를 딛고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 왔다. 향연이 끝나고 난 어수선한 자리를 치워야 했다.
나는 스스로 벗어버린 내 두꺼운 허물을 오래 돌아보았다.
그는 돌아서 나가는 내게 명함을 쥐어주며 오랫동안 입맞춤하였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 어딜 갔을까. 집은 조금 어질러지긴 했지만 변함없었다.
나는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졸음이 쏟아졌다. 영민의 손이 다시금 내 몸 구석구석을 훓어 내려갔다. 나는 캄캄하고 아득한 벼랑으로 한없이 떨어졌다.
해안을 걷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해안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하얀 옷을 입은 경희가 바다로 뒷걸음치며 들어갔다.
바닷물이 점점 그녀의 하반신을 가려갔다. 발목까지, 무릎까지, 허리까지, 그녀는 계속 긴 머리를 날리며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아! 안돼. 내가 잘못했어. 경희야! 경희야!’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안타까이 발을 굴렸다.
아무리 애써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영민이 멀리서 걸어왔다.
‘경흴 구해요! 빨리, 경희가!’
바다를 돌아보았을 때 경희는 없었다.
눈물로 번질거리던 그 앙상한 얼굴이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이럴 수가!
깊은 죄책감이 전신을 때리고 나는 땅을 치며 울었다.
‘경희야,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흐느껴 우는 날 아이들이 깨웠다.
잠시 눈치를 보던 작은아이가 어디 갔었느냐고 볼멘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슬픔에서 깨어나느라 심호흡하며 한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엄마 친구한테. 별일 없었지?”
“응, 아빠가 밤에 전화했었어. 오빠가 엄마 잔다고 했어.”
아들이 날 위해서 제 아비에게 거짓말을 했단다.
나는 큰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큰애는 부모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알 만큼 컸다. 그 앤 집안이 시끄러운 게, 내가 말없이 꼼짝 앉고 창밖을 내다보는 게 싫다고 했었다.
나는 왜 이 아이들을 위해서 내 일그러진 삶을 포기할 수 없는가.
작은아일 끌어안았다. 아이는 팔을 둘러 내 목을 꼭 껴안았다.
경희의 꿈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경희는 그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는 경희에게 무어라고 했을까.
나는 경희를 구실 삼아 메마른 내 영혼에 그를 끌어들이고 남편과 헤어질 이유를 만든 것이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은 내 어두운 삶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가 월요일 저녁 늦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
날 흘낏 쳐다보고는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욕물을 받으며 술 취한 그와 이야길 해도 좋을까 망설였다.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 것이다.
그는 목욕도 마다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나는 어젯밤 내내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일이었다. 그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때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가 좋다면 아이 둘을 내가 키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직장을 구해야 한다.
회사생활 할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월급쟁이 할 때가 편했다면서 사업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푸념하곤 했다.
오 년 전 그녀가 남편과 사업을 시작할 때 나는 그 회사에 투자하여 그들을 도와주었다. 회사는 그들의 노력만큼 착실히 성장하여 기반을 다져갔다.
그녀는 반가워 소리치며 어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여러 군소리를 그만두고 직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아이들이 좀 크고 시간이 있어 일을 갖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변함없이 날씬한 비결이 뭐냐고, 자기는 소처럼 일해도 점점 살이 찌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언제든지 나와서 자길 도와주면 대환영이라고, 애들 아빠는 여전히 술 잘 먹고 건강한지 물었다.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나만 아니면 자기가 그와 결혼했을 거라고 결혼피로연에서 농담하여 모두를 웃겼던 그녀지만, 그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와 결혼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던 친구였다. 따라서 나는 그녀 앞에서 한 번도 그와의 생활을 불평한 적이 없었다.
나는 고맙다며 함께 점심 먹자는 것도 마다하고 바쁜 그녀를 빨리 들여보냈다.
사람들은 이혼했다고 하면 날 한 번 더 쳐다볼 것이다. 사정 여하를 막론하고. 남편이 죽었다고 하면 혀를 끌끌 차며 동정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다행스러워 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떨까. 무어라 할까. 난 그 애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시댁과 친정집은 또 어떻게 날 비난할까.
남자들 술 먹고 바람 피는 것은 한때 누구나 겪는 일쯤으로 여기는 그들의 뿌리 깊은 편견을 대적할 도리라곤 없다. 내 인생의 소중함 따위는 코웃음 칠 것이다. 아니 여자 인생의 소중함,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을 그들이었다.
참,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미칠 것 같다던 어린 그녀는...
그에게 전화했다.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 줘요. 같이 저녁 먹어요.”
나는 그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잔뜩 장을 보았다. 거의 종일 음식 재료를 다듬고 요리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렸다. 아이들은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여덟 시가 넘어 아홉 시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그와 함께 식사하려던 나는 혼자 식탁에 앉았다. 그는 열두 시가 넘어 전화했다.
“초상집에 와서 오늘은 갈 수 없어. 미안해.”
아이들이 기다리지 않게 미리 전화할 수는 없을까?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지만 불쾌했다.
나는 밤이 깊도록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며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외전화를 걸었다.
경희의 말대로 되어버린 죄책감에, 설마 별일이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불길한 꿈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뜻밖에도 영민이 전화를 받았다.
“경희가 죽었어.”
나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경희가 그 꿈처럼 죽었다.
“나중에 연락할게.”
목이 잠긴 그가 수화기를 놓았다.
우리들의 참을 수 없는 욕정이 경희의 목숨과 바꾼 것이었나!
그녀가 진정으로 바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사라져버린 경희의 가엾은 목숨과 나에게 이는 모멸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떻게 네게 속죄해야 옳은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물을 내게 던지고 너는 그렇게 홀연히 사라져야만 했는가.
네가 목숨을 던질 만큼 그렇게나 괴로웠나. 그토록 연약한 줄은 알지 못했다. 네가 영민과 함께였지만 외로웠던 것처럼 나도 참을 수 없게 외로웠다. 그뿐이었다. 너 대신 영민을 사랑할 마음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
너는 왜 이토록 영민을 괴롭히는가. 착한 그가 널 진정으로 사랑한 것을 왜 믿으려 하지 않는가. 너는 이제 어디로 떠났는가.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듯 허탈했다.
다음 날 저녁 늦게 남편이 들어왔다. 초췌해 보였다.
저녁상을 차리는 것을 보고도 그냥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어요.”
그는 누운 채 충혈된 눈으로 물끄러미 날 쳐다보았다.
“당신과 헤어지고 싶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당신과 헤어지겠어요.”
“뭐라고?”
그는 작게 내밷으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의 안색에 분노가 스치는 것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다짜고짜 내 몸을 뒤흔들며 소리 질렸다.
“왜들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들 이래. 너, 내가 어디서 온 건지 알어? 헤어져? 누구 맘대로! 이 가정을 지키려고 내가 얼마나 죽을 똥을 싸는지 알어? 뭐가 불만이야. 벌어다 주는 돈 맘대로 쓰면서 팔자 좋게 놀고먹는 주제에 그것도 싫어서 헤어져? 너 바람났구나? 어떤 놈이야?”
그는 순식간에 내 볼을 후려갈겼다.
불이 번쩍 나는 아픔과 함께 나는 쓰러졌다.
무슨 소릴 하는가. 지겨움이 너무 강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이러한 처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네 사네 매달리는 애를 간신히 떼어놓고 집이라고 돌아왔더니 뭐가 어째, 헤어져?”
그는 문을 벼락같이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말하는‘집’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그의 집이 나의 집이 되지 못하는 것을 그는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포용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함께 살면서 포용해야 하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헤어지는 것보다도 못한 함께 사는 일을 그는 이해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존재일 뿐이었다.
그에게 이는 경멸감은 점점 더 냉정함을 불러일으켰다. 벌어다 주는 돈 때문에 그는 그렇게 당당하고 또 부당할 수도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우린 역할이 다른 것이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을 내 몸에 품고 힘든 열 달을 보낼 때마다 내가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그 고통을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았다. 심한 입덧으로 노란 똥물까지 토하면서도 한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출산의 고통으로 여자는 어미가 되고 진정한 한 어른이 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잡다한 시댁 일도 짜증 없이 해내며 나는 가족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기쁨으로 지니고 싶었다.
그것이 아내의 역할인 것처럼 그도 땀 흘러 가족을 부양하고 사랑해야 옳은 일이었다. 가족에게 자신이 하는 일만 대단한 양 횡포를 부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가족은 한 생명 한 생명이 서로에게 존중받아야 공존할 수 있는 조심스러운 존재들이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하면서 그 대가로 가족들에게 외면당했다.
나는 오랜 시간 노력했음에도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도 살아보고 싶다. 나도 인간다운 인간일 수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싶다. 나도 자유롭고 싶다. 내 몸도 내 마음도.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어디를 갔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밤새 영민과 경희를 생각했다.
영민을 만나고 싶다. 그를 만나 다시 따스하게 안고 싶다.
우리들의 상한 영혼을 함께 어루만지고 싶다.
불쌍한 경희는 잊고 싶다. 그러나 경희의 처참했던 모습은 날 괴롭혔다.
나는 꿈에서 그녀에게 시달렸다. 너무도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녀에게 칼을 던지고 그 사실이 너무나 엄청나서 도망치다 남편에게 붙잡히는 것이다. 그 혐오스러운 상황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한참을 벌벌 떨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울었다.
탈진한 채 창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진심으로 경희를 사랑할 수 없었던 나를 직시하는 일이 괴로웠다. 결국 나는 그녀를 끝까지 피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녀에게 애정을 지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삶에,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행운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냉담했었다.
그녀도 알았으리라. 그녀를 나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나로서는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나는 두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막내가 묻는다.
“엄마, 밥 안 먹어요?”
“너희들 학교 보내고 먹을게.”
“어디 아프세요?”
큰 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괜찮아.”
나는 화장실에 가 내 얼굴을 보았다.
눈두덩이 부석부석하고 안색이 창백했다. 머리칼이 꽤 길어 어깨에 닿았다. 슬프고 어두운 느낌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집안을 치울 기운이 없었다. 다시 잠들 수도 없었다. 그 끔찍한 꿈들이 두려웠다.
집을 알아보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세수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회사 근처의 방값은 꽤 비쌀 것이다.
되도록 집과 가까워야 아이들에게 좋을 텐데,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주택에 세를 얻는다 해도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나는 회사에서 버스로 삼사십 분 거리의 동네를 생각해보았다.
회사생활을 할 때 차를 타고 지나다니던 곳을 떠올렸다.
안암동 대학 앞에서 내렸다. 신학기를 맞은 학생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오고 갔다. 노란 개나리가 만발한 학교 담장 밑을 걸어 정문 앞에 섰다. 예나 다름없이 학교 건물은 마치 옛 궁전의 입구를 연상시키는 위엄을 담고 우뚝 서 있었다.
언젠가 영민이 입학하던 해 그의 청으로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회사 일로 안 된다고 거절했지만 그는 저녁 시간에 가면 된다며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데리러 왔었다.
그때도 노란 개나리가 담장을 뒤덮으며 희망차게 봄을 알렸다.
대학 축제였다. 나는 그들의 발랄한 몸짓을 이방인처럼 바라보았다. 영민에게 이끌려 다니며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가 어떤 빛깔들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동화되지 못하는 쓸쓸함으로 내가 기웃거려서는 안 되는 곳에 발을 들여놓은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지금 내 초라한 모습이 더욱더 그때의 추억을 가슴 아프게 했다.
그곳에서 경희를 맞닥뜨렸을 때 나는 뒤돌아 뛰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화려한 그녀에게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압도당했다.
경희가 함께 온 남자친구를 영민에게 인사시키고 내게 재미있게 놀다 가라며 자리를 뜰 때까지 나는 멀리 아직은 겨울 색이 남아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슬프게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산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괴롭히는 유치한 갈등을 그 산색으로 덮었다. 그리고 영민을 향해 어렴풋이 웃었다.
영민은 서둘러 날 데리고 학교에서 나갔다.
그날 밤 우린 밤 등산을 했다.
나는 그가 함께 있어 밤길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산속은 초봄답게 추웠다. 우린 밤새 별 말없이 걸었다.
나는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랬다.
이대로 영원히 캄캄한 밤이어도 좋으니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다리가 아파서 바위에 주저앉았을 때 그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 내게 입히며 껴안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격렬한 전율을 진정시킬 수 없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내 얼굴을 부드러운 입김으로 애무하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내 옷깃을 풀었다. 달빛은 그의 다정한 얼굴에 나무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따스한 물기 어린 눈빛이 나를 어린아이처럼 싸안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달빛에 비치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드러나는 희고 부드러운 젖무덤은 그의 따스한 혀가 닿자 소름처럼 떨리며 일어섰다.
나는 그의 머릴 안았다. 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눅눅해진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어린 시절 개울가를 뛰놀던 그를 생각했다.
그는 장난질이 심하던 남자애들과는 달리 순하고 의젓했었다.
경희가 그에게 마음대로 자신을 표현하면 할수록 나는 그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며 우린 사춘기를 맞았다.
그가 경남아, 불러 세우지 않는 한 나는 그를 말없이 지나쳤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가서야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그는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웃었다.
그의 작은 웃음소리가 순간 날 부끄럽게 하여 몸을 움추렸다.
그는 춥냐고 물었다. 그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다정한 그의 눈에 망설이며 입을 맞추었다. 그는 급하게 내 입술을 열고 그의 뜨거운 내음을 밀어 넣었다.
우리는 참기 어려운 정열을 불안해하며 멈출 수 없는 시간을 의식했다.
나는 무모한 일이 벌어지고 그 일로 인해 우리가 난처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몸은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시간을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 마, 안 돼. 아기가 생기면...’
그는 숨이 멎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가슴이 격렬하게 고동치는 것으로 그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게서 떨어지며 털썩 하늘을 향해 누웠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기운이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너와 결혼할 거야.”
달빛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그가 작게 말했다.
나는 기쁘기보다는 슬픔이 치밀어 올라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그는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슬픔 또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 운명의 무거운 느낌을 감지하고 있는 지금처럼 그때도 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픈 아집 속에 스스로 갇히고 있었다.
길을 뒤돌아 내려오며 나는 이제부터 살아가기 위해 더욱 황량해져야 할 나를 상상했다. 부동산에 들려 나오며 자꾸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간의 결혼생활을 뒤돌아보는 일은 싫다. 그러나 꾸역꾸역 쏟아지는 지난날들의 아픈 상처들이 고립된 좌절감과 함께 설움을 몰고 왔다.
집에 도착하자 일전에 왔었던 그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황망히 인사를 했다.
그녀는 때맞춰 나타났다. 좀 수척해 보인다 생각하며 나는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와요.”
밖에 서 있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방에 들어가 코트를 벗었다. 거울 속에 내 얼굴은 창백하여 지나치게 냉정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남편에게 분노를 느꼈다. 아직은 너무 어린 나이이지 않은가. 이런 일을 치루기엔 너무 어리게 느껴졌다.
“아이를 지웠어요.”
그녀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참, 아이를 가졌었다고 했나? 나는 그때 이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잊고 있을 수 있었을까.
“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드디어 그녀는 얼굴을 싸안고 흐느꼈다.
오, 하느님. 왜 이런 일들이 나와 상관있어야 합니까.
내가 이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합니까.
나는 동정심이라고 할 수 없는 잔인한 지겨움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그저께 밤 그가 소리치던 말들이 생각났다. 그는 사랑하지도 않는 나와 살기 위하여 이 아인 그저 노리개로 그칠 생각이었나. 어떻게 그라는 인간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말없이 좌우로 저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 표정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나는 가슴을 후리는 아픔을 느꼈다.
“아니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다만 현규씨가 진정으로 절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는 끊임없이 절 속였어요.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그를 증오해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정말 죄송해요. 사랑하지도 않는, 당신을 버리고 절 택해주길 바란 게 사실이예요. 그러나 그건 더 괴로웠을 거예요. 이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절,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어려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이런 일을 벌일 만큼 충분히 당찬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나이가 어린 만큼 많이 괴로울 것이다. 이 무모했던 열정의 대가를 어떤 모양으로든 단단히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그녀가 버리고 간 자리에서 영민을 생각했다.
그에게 얼마나 불행한 느낌인지 숨김없이 다 보이고 싶었다.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나를 그대로 내보이고 싶었다.
전화기를 손에 들었던 나는, 퍼뜩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놀라면서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경희를 생각하면...
나는 이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누르기 위해 샤워기를 세게 틀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지면서 온몸에 닭 껍질처럼 소름이 돋았다. 벌벌 떨면서 터지는 울음을 짓눌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뛰어나갔다.
“여보세요.”
“만나고 싶어.”
영민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소리 죽여 울었다. 그가 나의 바램을 알고 내 곁에 찾아왔다. 얼어붙던 마음이 갑자기 녹아 범람하는 물처럼 나는 이 바램을 막을 수 없었다.
“경남아.”
“제발 날 불러내지 마.”
“네가 필요해.”
“안 돼.”
“아파트 입구에 와 있어.”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얼른 가운을 걸치고 얼굴을 닦았다.
작은애가 친구 둘을 데리고 돌아왔다.
나는 젖은 머릴 털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은회색 차가 곧 보였다.
수염을 깎지 않은 꺼칠한 얼굴에 충혈된 눈이 어두워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앞만 쳐다보았다. 그는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그는 조용히 내 손을 쥐었다 놓았다. 말없이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는 한참을 달렸다. 그 무거운 느낌 속에서도 나는 그와 함께 있어 출렁이는 기쁨과 함께 심신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나는 부도덕한 아내도, 외로움에 지친 초라한 여자도 아닌, 그의 사랑을 받는 나경남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집까지 따라갔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책을 수없이 자신에게 했지만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 아니 그를 향한 나를 거역할 수 없었다. 그를 안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방문을 닫기 무섭게 날 안고 쓰러졌다. 걷잡을 수 없는 그의 애무는 마치 그간의 고통을 모두 쏟아 놓는 듯 격렬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응어리진 슬픔을 쏟아 놓았다. 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싸안고 그를 따스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눈물처럼 내 몸은 젖었다.
“경힐 사랑했어. 그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어서 괴로웠어. 그런데 경희가 날 버리고 떠났다. 그것도 너와 함께 있던 날 밤에...’
그는 내 가슴에 머릴 묻고 우리가 함께 짊어진 굴레를 무거워했다.
나는 경희가 내게 했던 말을 그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죽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는 몸을 떨었다.
그녀의 고통을 성한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꺼져가던 몸뚱이밖에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내 연약했던 의지를 훈장처럼 가슴에 새기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는 아내를 자살케 한 파렴치한으로 스스로 가슴을 후벼 팔 것이다.
남겨진 우리는 그리움으로 상해 갈 것이다.
경희는 그녀의 목숨을 던져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선물처럼 포장해서.
우리는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며 젖은 얼굴을 오랫동안 마주 보았다.
나는 어두워서 집에 돌아왔다.
어질러진 집안을 청소하고 내일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반듯하게 서 있을 수 없는 자신을 괴로워했다. 영민을 향한 그리움에 가슴이 저려 왔다.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는 양심과 무조건으로 치닫는 사랑이 뒤엉켜 날 에워싸고 있었다.
남편은 밤늦게 돌아왔다.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그가 맑은 정신이지 않은데 상심하면서 또 이야길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낮에 그 애가 다녀갔어요. 당신 아일 지웠다고 말하더군요.”
“그럼 됐잖아.”
옷을 벗어 건네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밷었다.
“그럼 되다니요? 나와 헤어져 그 애랑 사세요. 아이들은 내가 키울게요.”
“잘난 척하지 마! 니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야, 주제넘게 굴지 마!”
그가 소리 지르며 집어던진 화장대 위의 유리잔이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나는 그 파편이 내 몸에 꽂힌 듯 예리한 통증에 두려워 방을 뛰어나갔다. 그는 쫓아 나와 내 몸을 움켜잡았다.
“제발, 아이들을 깨우지 말아요.”
나는 겁에 질려 애원했다. 그리고 그에게 끌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깨진 유리 조각을 그대로 밟고 서서 내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두 손으로 브라우스를 난폭하게 잡아당겼다. 단추가 후두둑 떨어지면서 브래지어가 드러나고 그는 그것을 잡아 뜯었다. 나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로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그 순간 알몸이 된 치욕스러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의 발밑에 나뒹구는 깨진 유리잔을 집어 그를 찍고 싶은 분노를 느꼈다.
그는 함께 산 남편일 수 없었다.
그에게 이런 변태적인 잔인함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의 광분한 얼굴을 보면서 저항할수록 그를 흥분시킬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를 벽에 밀어부쳐 두 손을 잡아 누르고 사납게 애무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참아냈다. 심신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이 악몽이 빨리 깨길 간절히 빌었다.
내 몸을 찢으며 들어온 그는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사정했다.
비루한 개처럼 내 얼굴을 핧았다. 나는 더러움에 욕지기가 일었다.
“똑똑히 들어. 나는 너와 절대로 안 헤어져. 날 붙들고 늘어지는 계집은 딱 질색이야. 네가 날 사랑하든지 말든지 넌 내 아내야. 헤어질 생각은 절대 하지 마.”
잠시 후 그의 코 고는 소릴 들은 나는 비칠거리며 일어나 욕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몸 군데군데 흔적이 시뻘겋게 남아 있었다. 뺨에는 벌건 손 자욱이 나 있었다.
나는 샤워기를 틀고 웅크려 앉았다.
영민을 만날 수 있다면,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나는 소리 내지 못하는 부름을 끝없이 내지르며 서럽게 울었다.
나는 이 무서운 인간에게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 그는 곧 학교로 그들을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와 관계된 모든 것에서 영원히 멀리 사라지고 싶다.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일조차 싫다. 차라리 죽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이렇게 망가진 삶 속에 있다는 비참한 절망감이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나는 어둠이 채 벗어지지 않은 길을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나를 감고 있던 삶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을 향해 뛰었다. 내가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곳을 향해가듯 있는 힘을 다해 뛰어 달아났다.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의자에 쓰러졌다. 앞좌석에 머리를 기댄 채 종점까지 실려 갔다.
왜 삶은 내게 이런 모습으로 주어진 것일까.
무엇이 왜 이렇게 잘못되기 시작한 것일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한 곁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곳이 안양인 것을 버스 안내판을 보고 알았다. 좀 떨어진 곳에 아직도 네온사인이 밝게 켜져 있는 여관으로 들어가 힐끔거리는 종업원의 눈총을 받으며 작은 방에 들었다.
나는 어두운 방에 쓰러져 잠들었다.
얼마를 잤는지 문을 흔드는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종업원은 혹 자살이라도 했을까 봐 겁이 난 모양이다. 나는 문을 열고 그를 안심시켰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져 왔다.
내가 매여 있던 현실이 덜미를 잡으며 발자국마다 따라왔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아이들은 영악스러우리 자신들의 생존을 지켜나갈 것이다. 아마 시어머니께서 곧 오실 것이다. 그리고 온갖 욕을 퍼부으며 당신의 자식들을 거둬주실 것이다.
나는 그들을 잊어야 한다. 당분간은 잊어야 한다.
미칠 듯한 그리움으로 달려가고 싶은 영민을 잊어야 한다.
나는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또다시 인간에게 매이는 어리석음은 반복하지 않으리라. 사랑하는 그일지라도.
목이 메는 밥을 꾸역꾸역 들이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좀 더 자고 싶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모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잊고 잠들어야 한다.
나는 이틀간 그곳에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피멍이 옅어진 목덜미에 스카프를 두르고 나가 공중전화를 걸었다.
명옥이 받자마자 황급하게 어디냐고 묻는다.
남편은 그녀에게 전화해 날 만나지 않았냐고 묻더란다.
그녀는 두어 시간 지나서 안양까지 달려왔다.
“이 지경이 된 줄은 몰랐구나. 답답하기는... 우리 집으로 가자. 가서 이야기하자. 밥은 먹었어?”
“아니야. 너희 집은 안 갈래.”
“그인 출장 중이야.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우선은 우리 집에 가자.”
그녀는 자신이 사는 집으로 운전해 갔다.
“미안해. 바쁜 사람을 불러내서...”
“그런 섭섭한 소린 하지 마. 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지내기에 괜찮은 줄 알았지. 네가 이런 일 벌일 때야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니. 그토록 몰랐으니 내가 바쁘다고 너무 무심했어. 미안해.”
“이런 모습은 부끄러워. 일전에 취직을 부탁했을 때 그와 헤어질 결심을 했어. 바쁜 널 붙들고 그런 번다한 얘긴 하고 싶지 않았어.”
“아이들은 어떡해?”
“......”
“너 아니어도 봐 줄 사람이야 있겠지만...”
“참아야지. 다른 대책이 없어. 지금으로서는.”
그녀의 집은 적당히 어질러져 있었고 그녀의 취향대로 별 장식 없이 편안했다. 그녀는 물을 올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자기의 옷을 꺼내주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둘둘 말은 머플러, 구겨진 셔츠 위에 헐렁하게 걸친 곤색 자켓, 낡은 청바지, 야윈 창백한 얼굴. 마치 낯선 타인처럼 내가 날 보고 있었다.
나는 다른 곳에 와 있었다. 갇혔던 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3.
명옥의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사흘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재단을 거쳐 옷이 생산되는 전 과정을 꼼꼼히 살피는 일이었다.
서류상의 하자나 물건의 불량을 찾아 수정케 한 후 작업에 들어가게 하는 일을 거드는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주로 판매와 매장관리를 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내게 친구는 하루에 한 가지씩 가르치고 실습시켰다.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잘 해냈다.
그녀의 회사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중소의류업체들이 사라진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몇 년째 착실한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제법 알려지고 몇 개의 백화점 외에 자신의 매장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대출금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직원들에게 동업자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들의 상냥한 대접 속에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출근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계단에서 남편과 맞닥뜨렸다.
내가 재빨리 뒤돌아서는 것보다 그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내 팔을 낚아채어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리둥절 놀라던 명옥이 소릴 지르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왜 이래요. 말로 해요. 말로!”
명옥이 애원했다.
그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한 손으로 내 뺨을 후려갈겼다.
나는 그 자리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따라 앉으며 조급하게 말했다.
“집에 가자. 애들이 기다려. 당신이 하자는 대로 다 할게.”
나는 코피를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명옥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머리 위로 붉게 물드는 하늘이 펼쳐졌다.
그 고운 하늘은 나의 가슴에 뜨거운 덩어리를 밀어 올렸다.
그는 날 번쩍 안고 차까지 뛰어가 밀어 넣었다.
그가 운전석에 앉기 전에 나는 황급히 차 문을 열고 튀어 나갔다. 차가 달리는 거릴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손님이 내리고 막 떠나려는 택시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탈 수 있었다.
나는 멀어지는 남편과 친구를 뒤돌아보았다.
‘애들이 기다려.’
나는 머릴 묻은 채 흐느꼈다. 마치 나만의 아이들인 것처럼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고개를 들어 하나둘 명멸하는 밖을 내다보았다. 아이들에게 나는 죄인이다. 이 세상에 그들을 존재시켰고 지금 그들을 떠났다.
나는 그에게 절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차라리 죄인이 되리라.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 가지? 나는 망설이다 말했다.
“신촌이요.”
영민이 있는 곳이다.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너무도 보고 싶어서 술을 먹고 잠들어야 했던,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의 집 창은 불이 꺼져있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차가운 담벽에 기대어 어두운 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만나서는 안 된다고 나 혼자 결정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 내린 가혹한 판결이었다. 나는 떨고 서 있는 잘난 스스로를 비웃었다.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자신을 쥐 뜯으며 돌아서지 못했다.
그가 들어가는 모습만이라도 보고 가자.
날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기라도 한 듯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있지 못하고 쪼그려 앉았다.
달빛을 감추며 구름이 지나간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맑은 밤하늘이었다.
아스라이 보일 듯 말 듯 한 별들을 헤며 한없을 것 같은 시간을 주저앉아 있었다.
갑자기 비치는 자동차 불빛에 얼굴을 묻었다.
차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 와 기웃거리던 영민이 놀라며 날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된 거야. 응?”
그는 외투를 벗어 날 싸안았다.
“들어가자.”
나는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날 껴안은 채 계단을 올라갔다.
“우린 만나면 안 돼.”
나는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냥 갈 수 없어. 이렇게 왔잖아.”
그는 곧 포트에 물을 올렸다. 그리고 옆에 와 앉아 흘러내린 내 머릴 쓸어 올렸다.
“피가 묻었잖아? 무슨 일이야. 말 좀 해 봐.”
그는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보고 싶었어.”
그는 다시 가슴에 날 안았다. 오래도록 잠자코 안고 있었다.
나는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따뜻하게 엄마 품에 안긴 기억이 없다. 나는 그의 품에서 따뜻한 어머니의 가슴을 떠올렸다. 그는 내 젖은 얼굴에 길고 긴 입맞춤을 하였다.
“널 잊을 수 없어. 네가 원할 때까지 기다릴게.”
그는 아이를 어르듯 날 안고 다독거렸다.
잠시 후 고개를 들자 눈물 가득한 그의 눈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나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화장실로 갔다. 옅은 핏자국이 묻은 창백한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따스한 더운물을 틀었다. 춥고 떨렸던 심신이 나른하게 풀어지는 기진함을 느끼며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세수를 했다.
거실엔 맑은 피아노 선율이 잔잔히 물결치듯 흘렸다.
나는 젖었던 날개를 말린 새가 포르르 날아오르는 듯 가벼운 기분을 느끼며 식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집안 가득한 향기, 그것은 유자차였다.
“슬아는, 할머니하고 있어?”
나는 다시금 써늘하게 밀려오는 압박감을 느끼며 또 하나의 작은 경희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잘 지내.”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더 물을 수 없었다. 알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나는 그를 도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잔잔한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잊고 싶었다. 내 의지로 다스리지 못한 행위들에 대해서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잊고 싶었다. 그의 곁에 있음으로 가슴 설레는 기쁨에서 떠밀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차분한 얼굴에 짙은 음영이 가슴 한쪽을 저리게 했다. 나는 그를 안고 싶은 충동이 너무 강해서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보며 깊은 심호흡을 해야 했다.
일어나야 한다. 발을 내딛어서는 안 되는 곳에서 다시는 무모한 짓을 벌려서는 안 된다.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무조건 그에게 달려왔다.
나의 모순된 자아 상실을 그는 너그러이 받아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올 수 있었다. 그의 괴로움을 보는 순간, 내 이기적인 행위가 그를 얼마나 상처 입히고 있는지 깨달아야 했다.
나는 일어섰다. 현관 앞에 선 나를 그는 다시 안았다.
온몸을 휘도는 강한 전율에 견딜 수 없는 나는 반사적으로 거칠게 그의 팔을 풀고 집을 나왔다. 그는 따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눈물을 참으며 내가 거처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몇 년 전 남편으로 인해 와보았던 대형 유흥업소이다.
나는 그때 고막이 터질 것처럼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참으며 그곳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몸짓이 순간순간 새하얀 조명 아래서 흐느적거리다 탁 멈추는 묘한 부동자세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현기증이 일어 고개를 돌렸다.
한 어려 보이는 사내애가 담배를 권한다. 고개를 저으니 맥주를 따라준다. 옆에서 좀 뚱뚱한 아줌마가 안주 접시를 올려놓았다.
그들은 고모와 조카 사이로 이 홀에서 자리를 잡고 술을 파는 이들이었다.
한쪽 구석으로 쭉 이어진 스탠드형 탁자는 네다섯 사람이 앉을 만큼을 사이로 주인이 달랐다. 결국 이 홀 주인은 이중으로 돈을 벌고 그들은 그 업주에 세를 내고 먹고사는 이들이다.
나는 그들의 주선으로 그 자리 중 하나를 빌렸다. 또한 그 홀에서 잠을 자도 좋다는 조건까지 얻어냈다. 내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나온 것을 안 그들은 중간에서 모든 편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곳에도 남을 돕는 착한 사람들은 있었다.
홀에서 잠을 자는 이들은 나 말고도 술 심부름하는 사내애들이 서넛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달을 못 견디고 월세방을 얻어 잠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곤혹스러운 일들을 피해 다니기에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를 누님이라고 부르며 도와주던 민식의 배려와 고모의 돌봐줌이 없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을 것이다.
사내애들의 호기심과 찝쩍거림은 사흘이 멀다 이어져 나를 괴롭게 했다.
홀의 지배인이라는 이는, 단순히 거절한다는 것에의 저항처럼 집요하게 유혹했다. 그러나 내게 그들은 그저 가엾은, 같은 인간 이상의 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
술을 먹고 취하여 춤을 추는 많은 사내들은 점점 더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모두 괴로운 이유들이 충분했다. 그들은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제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남편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그곳에서 매일 또 다른 남편들을 만나고 있었다.
내게 새로운 낮을 부여할 수 있었던 그곳의 경제력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늘여야만 했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한 남자의 도움으로 내가 꿈꾸던 생활에 좀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아주 가끔 내게 와 조용히 술을 마시고 두세 곡의 춤을 추고는 돌아갔다. 우리는 서로 무엇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막연히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왔을 때 미소 지었다.
나는 영민을 잊기 위해서라도 그를 생각했다.
내 가슴을 매일 들쑤시며 휘젓는 그리움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을 잊기 위해서 술을 먹고 잠들곤 했다.
나는 낮에 학원을 등록했다.
내가 남기고 온 시간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가능 여부를 제쳐놓고 무턱대고 책에 매달렸다. 어린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이겨내기 위해서 나는 그들보다 뒤져서는 안 되었다.
홀에 영업하러 나가기 전까지 집요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나의 의식은 서서히 깨어나 내 잔인한 요구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섯 시간 잠자고 여섯 시간 영업해서 돈을 벌었다. 나머지 시간은 내가 부당하게나마 선택한 자유의 대가를 스스로 모질게 치루었다.
나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부당함들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세어갔다.
첫딸의 의미는 내게 부당했다.
엄마의 품을 기억할 수 없었던 내게 동생들은 책임이며 의무였다.
나는 그들의 엄마가 되어 성장했다. 그들을 씻기고 어르고 먹이는 일을 싫다 좋다의 느낌도 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 늘 무언가를 두리번거렸다. 어쩌면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욕구를 지니고 다만 그것을 의식한다는 것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내가 몸으로 익힌 가족의 의미는 나의 의식을 눈멀게 할 뿐 아니라 무력감까지 느끼게 했다. 동생들은 불쌍했다. 마음껏 먹지 못하고 부모의 사랑을 누리지 못했다.
나는 동생을 업고 들판을 쏘다녔다. 그런 날은 엄마의 푸념과 탄식을 한없이 들어야 했다. 나는 그들 모두를 내 부모에게서 구출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들이 원한다면 학교는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 소용없이 하나밖에 없는 둘째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기적이고 영특한 셋째 동생이 대학을 갔다.
대학 졸업장은 그녀의 결혼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 앤 서울에서 제 말대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누리며 그것을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남편이 인쇄소를 하여 돈을 잘 벌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불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참는 것으로 일관해 온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처럼 오랫동안 인내의 아름다움을 꿈꾸며 살았다. 참아야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자각하는 나를 수없이 죽이며 기다렸다.
기다림의 의미를 회의하는 일에 지치면서 나는 결국 또 다른 내게 지고 말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누군 뭐 몰라서 참고 사나. 그런 자위는 날 도와주지 못했다.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버릴 수 없었다.
부당한 그와 또한 자신에게 부당한 나를 참을 수 없었다.
영민을 소유할 수 없었던 나 자신에의 부당함은 더욱더 나를 자학하게 했고 나는 결국 그 동경을 버릴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그는 끈질기게 버티었고 나는 그와 동등해져야만 했다.
그 의식은 외롭고 피곤하여 지치는 심신을 다그쳤다.
업소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대신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신경 썼다. 그 방법은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침묵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함께 놀러 간다고 할 때, 그들 중에 누가 아플 때 나는 그들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들은 돈을 좋아했다. 그것으로 마음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자주 느꼈다. 또 다행인 것은 그들의 대부분이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원 교실에서 문득 내다본 창밖에 한 그루 단풍나무가 햇빛에 불붙듯 빨갛게 물들었다.
공부가 끝나고 버스를 기다리고 섰는데 노란 단체복을 입고 가을 소풍이라도 다녀오는 듯 지나가는 한 무리의 꼬마 아이들.
나는 그날 휘청거리며 내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영업시간에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도 가끔 찾아와 습관처럼 한 번쯤 술을 권하는, 그의 잔을 말없이 받아 마셨다.
그는 놀란 듯 다시 한 잔을 권했고 나는 그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군요.”
“아니요.”
나는 그에게 과일 안주를 서비스했다.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군요.”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듯 그를 쳐다보며 웃었다.
“나에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술도 안 드시면서 어떻게 이런 장사를 할까 생각했어요.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아이들이 둘 있어요.”
“그래요? 당신하고 이야길 나누고 싶었어요. 근데 여긴...”
마침 벼락 치듯 울리는 음악 소리에 우린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고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마주 보았다.
“조금 기다리겠어요?”
나는 크게 소리 질렀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민식에게 뒤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갔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물에 반사된 불빛들이 어지러웠다.
그는 코트 깃을 세우고 물끄러미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흠칫 놀라며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그에게서 영민을 본 것 같았다.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그가 날 쳐다보며 가자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영민이 아니었다. 약간 갸름하고 부드러운 얼굴은 영민과는 닮지 않았다. 키도 영민보다는 좀 더 큰 듯했다. 그런데 그는 영민을 연상케 했다.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을 향해 속죄라도 하듯 그를 향한 그리움을 짓이기며 참아왔다. 그런데 나는 이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서 영민을 찾고 있다.
“미안해요. 예전에 알던 사람이 생각나서요”
“누군가 몹시 생각하면 그 사람을 닮은 것 같은 사람을 자주 보아요.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오늘은, 좀 함께 있고 싶어요.”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순간 그는 날카롭게 나를 직시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이름은......”
“신인철입니다. 당신은?”
“경남이예요. 나경남. 왜 가끔씩 혼자 와서 놀다 갈까 생각했어요. 적당히 술을 마시고 두세 곡 춤을 추고 가는, 늘 그랬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일이지요. 잊혀져 가는 게 싫어서요.”
“그 장소에 무슨 추억거리가 있나요?”
“형과 함께 마지막으로 왔던 곳이에요. 형 친구들하고 즐겁게 밤을 보낸 게 마지막이었어요. 다음 날 형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 그는 다시 내게 물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나요?”
“아니요. 집을 나왔어요.”
잠시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부담스러우신가요?”
나는 반짝거리는 불빛에 눈을 가리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군요.”
그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그가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잠시 그가 내 곁에 있어주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을 그가 이해하기만 바랬다.
그는 조용한 레스토랑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그의 머리칼에 물기가 반짝거렸다. 짙은 감색 코트가 좀 흰 얼굴과 썩 잘 어울렸다.
그에 비해 내 차림새는 초라했다. 헐렁한 스웨터에 검은 스커트, 나는 앉음으로 드러나는 내 무릎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식사는 했어요?”
나는 저녁을 대충 야채와 과일로 때우곤 했다.
“네.”
그는 주문한 후 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한 손을 벌려 둘 사이에 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부드러운 눈빛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손은 따스했다. 그는 나를 이해해 주려고 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편안했다.
방금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 것 외에는.
나는 영민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내면에서 아무도 사랑할 수 없게 하던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렇듯 지치는 그리움을 모르는 그는 어디에 있는가.
그도 이렇듯 지치는 그리움으로 상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인철이 따라주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뜨겁고 강렬한 아픔이 가슴을 채웠다.
그는 잡았던 손을 놓고 내 어깨를 안았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나는 잠자코 한곳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그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참았다. 그리고 오늘 그 눌렀던 슬픔이 조금씩 흘러나오려 한다. 이 따스한 공간을 흐르는 조용한 팬파이프의 선율은 그것을 가속화 하려는 듯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가 안고 있는 나는 그에게 너무 무거울 것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곧 일어서야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으신 거지요?”
아니, 아이들보다 더 그리운 사람이 있어요. 나는 당신을 보면서 그를 생각했어요. 내 눈빛은 말했다.
“우리 형도 아들이 하나 있어요. 난 그 녀석을 좋아해요. 경남씬 낮엔 무얼 하시지요?”
“......”
“저는 학교에 나갑니다. 불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는 발음이 어려운, 보통 낭만적일 것 같은 불어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림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낮엔 공부를 해요.”
그는 무슨 공부인지 묻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려서 누굴 좋아한 적 있나요? 어려서 함께 자란 친구요.”
“아니, 없어요. 그렇지만 좋아했던 여자는 있었어요.”
“지금은 아닌가요?”
“결혼했어요. 지금은 아이를 둘쯤 낳은 엄마가 돼 있겠지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인철씨는?”
“별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조카를 돌봐주어야 해서요. 가엾은 형수가 먼저 결혼하면 좋겠어요.”
나는 내 어깨에 닿은 그의 손을 느끼며 그의 얼굴에서 풍기던 부드러움이 어느 정도 그의 성격과 함께 직업도 상관있구나 생각했다.
그가 본 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했다. 밤업소에 어울리지 않는 맨얼굴에 치장하지 않은 내 차림을 사람들은 호기심 어려 했다. 그곳에서는 그랬다.
“무슨 공부를 하는지? 말하기 곤란하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서른두 살 먹은 여자의 대학 입시 준비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은가.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생각이 났다.
간곡하게 대학 진학을 하라고 권하셨던 선생님은 내게 무엇을 바란 것이었을까?
나는 그때 분명 나 자신보다 가족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 아닌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고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믿었던 관계들을 파괴하고 말았다. 아이들. 내가 나누어 준 생명들까지 떠나왔다.
나는 이 남자에게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나와 함께 잠시 있어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나는 불안한 존재일지 모른다.
“저는 인철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지금 이렇게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고마워요. 사람이 그리웠거든요.”
그는 웃었다. 그리고 빈 잔에 다시 위스키 한잔을 따랐다.
“경남씬 그곳이 어울리지 않아요. 볼 때마다 낯선 곳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일까 생각했어요.”
“제가 필요한 만큼은 벌고 저축해요. 시끄러워서 견디기 힘들지만 그것만 참으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날,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어 시간 함께 있었다.
그 이후 그는 전보다 조금 더 자주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시비 붙는 손님 때문에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간혹 겪으면서 변함없이 낮에 학원에 가고 밤에는 그곳에 있었다.
학원 성적은 점점 나아졌다. 모의 학력고사를 볼 즈음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갈 정도 성적은 되었다. 학원 아이들의 얼굴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부족한 실력을 좀 더 채워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일 년을 더 공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안타까웠다. 어떻게 나의 일 년을 어린 학생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어린 그들은 나를 낯설어했다. 나는 꼭 필요한 일상적인 말 외에는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더욱 나를 어려워했다.
재수하는 학생들은 이미 대학생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과격한 놀이를 하곤 했다. 그들은 미팅도 열심히 하고 동거하는 커플도 있었다.
나는 요란한 아이들과 함께 묵묵히 공부하는 축에 끼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에 나갔다. 고단하지만 나의 소망을 실현해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모의 학력고사의 좋은 성적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인철을 만났다.
수줍음을 누르고 그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놀라워하며 내 희망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내 희망은 이러했다.
나는 국문과를 입학해 졸업 후 교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면 내 아이들을 찾아갈 것이다. 아이들을 내 힘으로 키우고 싶다.
내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며칠 후 나는 주인아줌마의 전화 받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 밤새 앓고 처음으로 업소에 나가지 못했다.
미리 연락했는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간신히 일어나 나갔다.
인철의 목소리였다.
어디가 아프냐고?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괴로웠던 차에 그의 목소리를 듣자 목이 메어 잠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괜찮다는 내 말을 믿지 않으려는 듯 한 시간이 안 되어 집으로 찾아 왔다. 그를 방에 들이는 일이 내키지 않았으나 그를 만나러 나갈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염려하는 그를 냉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그는 한사코 말리는 나를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며 제 손으로 밥을 하고 누릉지를 끓여 상을 차려 들고 들어왔다. 그가 들고 온 밥상은, 내가 혼자 밥을 해 먹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훌륭한 밥상이었다. 상에는 그가 사 온 먹음직스러운 장어구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이 누구길래 날 위해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선물하는가!
“생일 같아요. 고마워요.”
“뭘요. 사온건데요. 가끔 엄마 대신 조카에게 요리도 해줘요. 참, 경남씬 생일이 언제지요?”
“글쎄, 잘 모르겠어요. 음력이라 달력을 봐야 알겠어요.”
생일은 어제였다. 혼자 생일을 맞는 건 쓸쓸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에도 생일에 나는 말없이 미역국을 끓여 식구들과 함께 먹었다.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 어머니조차도.
언젠가 나는 내 아이들의 생일을 차려주면서 엄마 생일을 묻지 않는 걸 이상스레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 엄마 생일은 언제란다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 법석 떠는 아빠 생일에야 지나간 내 생일을 기억해내곤 했다.
“음력 며칠인데요?”
그는 앞으로 내 생일을 기억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부담 주는 게 싫었다. 나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맛있어요. 인철씨에게 시집오는 여자는 좋겠어요. 고마워요.”
“웃는 얼굴을 보니 좋네요. 얼굴이 안됐어요.”
그는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았다.
머리맡에 정돈되지 않은 채 쌓여있는 책, 벽에 걸린 옷 몇 가지, 그리고 이 책상 겸 밥상이 내 살림의 모두였다. 아니 작은 상자곽에 로션병과 빗 등이 담겨있고 그 곁에 학습용 카세트 라디오가 있었다.
그는 웬지 서글픈 얼굴로 식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숟갈도 없이 나무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안집 아줌마에게 수저를 빌리려 가려고 했다.
“왜요? 숟갈 없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마시면 돼요.”
누른밥 끓인 숭늉을 마시며 그는 내 손을 잡아 다시 앉혔다.
나는 내 수저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그는 그대로 가져다 남은 밥을 떠먹었다. 나는 그의 격의 없는 행동에 부끄러움과 함께 뭉클한 친밀감을 느꼈다.
“이렇게 몸이 안 좋을 때 혼자 있으면 많이 쓸쓸할 것 같아요. 그래서 무턱대고 왔어요. 미안해요.”
그는 내 초라한 모습을 본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의 사려 깊은 마음이 고마울 뿐이었다.
“아니예요.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잖아요. 전 이런 친절함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 눈물이 글썽해서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마주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웬지 경남씨 보면 마음이 좀 그래요.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가엾어 보이는 건 싫은데......”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아마 혼자 지내는 데다, 늘 아무 장식도 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네요. 고적함이랄까.”
그래요. 나는 늘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때도 나는 그랬어요. 살아가면서 내가 힘들었던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 아닌 다른 것에서 잊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환경은 더욱더 나를 고립시켰습니다.
나는 뛰쳐나왔습니다. 어쩌면 그런 나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해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힘들어서 이렇게 병이 났어요. 그리고 지금 친절한 당신에게 안기고 싶을 만큼 지쳐있습니다.
말없이 있는 내게 그는 얼른 수저를 들려주며 더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식사를 하고 나자 기운을 좀 차릴 수 있었다.
“너무 무리한 것 같군요. 공부만 해도 힘들 텐데, 좀 쉬는 게 좋겠어요. 이번 방학 때 저랑 어디 좀 다녀오지 않겠어요? 남해 쪽으로...”
“글쎄요. 그러고는 싶지만...”
“왜요? 뭐가 문젠가요?”
나는 그와 자꾸 친밀한 관계로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여자이며 또다시 누굴 사랑하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영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여 벌어진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이 나를 묶고 있었다.
“저와 여행하기 싫으세요? 절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제가 자유롭지 못해서. 인철씨와 여행할 만큼 스스로에게 자유롭질 못한 거예요.”
“아, 예. 그러나 마음이란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아무튼 마음이 변하면 함께 가자고 해요. 올겨울엔 형수와 조카랑 남해 쪽을 가려고 했거든요.”
“정말 좋은 삼촌이네요. 형수님이 기뻐하시겠어요.”
그가 내게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가족들에게 잘할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후 쉬라면서 일어났다. 그를 보내고 나는 그를 향하는 내 마음의 뻔뻔스러움에 대해서 괴로웠다. 그러나 영민을 향하는 마음을 거두어 드려야 하는 아픈 마음에 그가 이미 따스하게 스며들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
힘들어도 슬프고 허전한 이대로 있고 싶다.
그가 내게 희망처럼 따스한 존재가 되는 것은 분명하나 나는 내 갈 길이 따로 있다.
그날 밤 꿈에서 영민을 만났다.
그는 슬프게 뒤돌아 앉아있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 영민아! 부르며 그를 안았다. 그러나 뒤돌아본 그는 영민이 아닌 인철이었다.
나는 털썩 주저앉으며 아니야, 이건 아니야. 목 안 가득 치미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아이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아이들은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계속 내게 화를 내며 비난하였다.
나는 그만 얘들아, 얘들아, 가슴을 쥐 뜯으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철의 양손을 잡고 바닷가로 걸어갔다.
나는 안 돼! 그곳으로 가면 안 돼! 소리 지르며 뒤쫓아 갔다. 거긴 경희가 빠져 죽은 데야, 애들아, 안 돼!
나는 내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아직은 어두운 창문을 바라보았다.
저 창문의 어두움이 어서 걷히길 기다렸다.
아이들, 내가 남편과 함께 나누어 준 생명들, 그들의 어미인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남편은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을까. 별일은 없이 잘 있는 걸까.
나는 그들을 버려두고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걸까. 꿈처럼 아이들은 나를 원망하고 있는 걸까.
오늘은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가 보아야겠다. 선생님이라도 만나보고 오자. 잘 지내는지, 아니 만약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지 않다면 나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의 안부를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들을 떠나지 않았는가.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어 찾아간다면 도대체 왜 집을 나왔는가. 아직 돌아갈 수 없다면 그들 주위를 기웃거려서도 안 된다.
나는 아이들을 찾아가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 밤새 갈등했다.
그들이 소중한 만큼 나 역시 소중했다. 이미 그릇 친 내 삶이 거듭해서 잘못 되어 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일 년을 더 공부하였다. 인철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편안함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그 도움이란 그가 내게 따스한 인정을 베푼 것들이었다.
내가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듯이 그도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는 한 달에 두어 번 업소로 나를 보러 왔고 이제는 춤추지 않았다.
나는 아주 견디기 어려울 때, 말없이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 조용한 곳에 가서 잠시 앉았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건 내게 큰 위안이었으며 격려였다.
영민을 향한 그리움이 점차 고개를 숙이고 잠잠해져 갔다.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움도 점차 조용해졌다.
나는 조금씩 편안한 마음으로 안정감을 느껴갔다.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편안하듯이 그도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음으로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여름방학이 되자, 내가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에 들렸다.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는 불문학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번역한 책이 곧 출판될 거라고 했다.
우리는 주로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풍부한 지식을 이야기해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나를 이해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아주 많은 것을 알 뿐만 아니라 따스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메마르고 가난한 나와는 달랐다. 그는 넉넉하여 나누어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아프고 어두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는 것을 불현듯 느꼈다.
그날 나는 그가 하는 우스운 이야기에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 소리 내서...
그는 아주 기분 좋은 얼굴로 나를 오래 주시했다.
나는 내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그는 굳게 닫은 내 마음을 열고 들어와 있었다.
내가 꿈꾸던 밖, 그것에의 자유를 그는 이미 모두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발버둥 치며 갖고 싶었던 자유를 그는 그저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었다. 그에게 피해의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무리하여 애쓰는 것도 없었다. 그는 늘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우리는 약속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여름 내내 도서관에서 만났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좀 떨어진 곳에 앉아서 공부했다. 그는 내 옆에 와서 앉지 않았다. 가끔 고개 들고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곤 했다. 그는 중간에 가끔 나가서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나는 일곱 시면 그와 나란히 도서관을 나섰다.
“바로 일하러 가나요?” 그가 물었다.
“예.”
나는 웬지 오늘 그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울 게 없는데 새삼스럽게 업소로 가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빨리 영업이 시작돼요?”
“그렇진 않지만 준비할 것들이 있어서요.”
“저녁은 그곳에서 먹어요? 먹는 게 부실하면 안 되는데, 오늘 말복인데 영양 보충 좀 합시다. 저녁 먹고 들어가도 되지요?”
“고맙지만, 이 시간에 안주거리가 들어와요. 그걸 받아서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럼 그걸 받아놓고 잠깐 나와요. 기다릴게요.”
나는 고마운 그에게 조금이라도 신세를 갚을 기회인 것 같아 오늘 저녁은 내가 대접해야겠다 생각하고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 계산하는 내게 주인에게서 받은 돈을 도로 쥐어주었다.
“인철씨에게 염치없어서 싫어요.”
“좀 더 있다 기회를 드릴게요. 아직은 일러요. 경남씨와 식사하는 내가 즐거웠으면 그걸로 충분해요. 경남씨 보면 내가 좋거든요.”
그는 내 어깨를 한 번 꾹 쥐고는 돌아서 갔다.
나는 힘이 솟는 느낌으로 홀에 들어갔다.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테이블 위에 유리잔이 여느 때보다 반짝 빤짝 빛났다. 불빛에 유리잔은 늘 반짝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그 반짝거리는 유리잔을 볼 수 있었다.
음악 소리가 감미롭게 가슴을 적셨다. 내 손이 닿는 모든 사물에 생기가 느껴졌다. 이런 느낌이 바로 행복이리라. 가슴 가득 찰랑찰랑 넘칠 것만 같은 기쁨, 모든 사람에게 노래하듯 부드럽게 말하고 싶은 다정함, 평소 절대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 지배인의 반질반질 윤나는 뒤통수까지도 미소를 자아내는 이 넉넉한 마음이 어디에서 왔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마음 가득 비추는 이 빛은 사랑이었다.
인철은 조용히 나를 사랑으로 감싸고 있었다.
4.
대학입시에 합격했다. 나는 내가 소원하던 대학 국문과에 들어갔다.
나는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돌아서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휩싸며 볼을 때리는 강한 찬바람에 쾌감까지 느꼈다.
십여 년 전 영민과 함께 올랐던 정능산으로 갔다.
그와 나란히 오르던 숲길을 걸으며 그때 바라보았던 산줄기를 다시 바라보았다. 검붉은 잿빛이 차분하게 펼쳐진 겨울 산이 마음 가득 들어왔다. 그 산은 조용히 쉬고 있는 듯 편안해 보였다.
숲속에서 한 마리 작은 새가 날아오른다.
겨울 숲을 혼자 날아가는 작은 새의 고독한 비행.
숲을 벗어나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오래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앉았던 자리에 서서 가만히 영민을 불렀다.
당신은 나의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당신을 만날 수는 없지만 늘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꿈을 이제야 이루었어요.
당신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난 자신이 없었어요.
난 당신과 경희 모두를 사랑했어요. 당신을 내 가슴속에만 지니고 살려고 했어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매일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의도한 삶을 살아갑니다. 내 아이들을 외면하며 얻은 것입니다.
언젠가 오랜 세월이 흘러 당신을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로서는 그보다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흘러내리고 나는 그곳에 앉아 그날 밤 영민이 부르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는 어두운 밤을 향해 서서 부드럽고 힘차게 가곡‘산길’을 노래했다. 양주동 작사 박태훈 작곡이라고 알려주던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
어둠 속에 우뚝 섰던 그는 이제 내게 없다.
그리움만 남아 안타까운 나는 고적한 그 노래를 혼자 다시 들었다.
나는 예전과 별다를 게 없는, 낮에는 대학에 나가 공부하고 밤이면 업소에 나가 돈을 벌었다. 답답했던 학원이라는 공간이 드넓은 대학으로 바뀌고 대하는 아이들의 표정과 대화가 바뀌었을 뿐 내 일상이 바뀐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가슴을 펴고 잠들 수 있었고 폭넓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입시지옥에 시달렸던 아이들답게 요란하게 젊음을 발산했고 그들은 아름다웠다. 부모에게 떠밀리며 공부했던 아이들은 마음껏 해방감을 즐겼다. 그들 옆에 비켜선 나는 공부하는 일이 즐겁고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행복했다. 저녁 시간까지 공부할 수 없는 나는 시간을 쪼개듯 아껴야 했으므로 인철과 따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는 변함없이 날 찾아와 주었다.
일요일, 나는 도서실에서 책을 꺼내다 현깃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말시험으로 며칠째 잠을 좀 덜 자긴 했지만 이런 일은 없었는데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았다.
인철이 다가와 놀라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안색이 안 좋아요. 어디 아픈 것 아니에요?”
“잠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미안해요.”
“경남씬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것 같아요. 좀 쉬어가면서 공부도 하세요. 모든 게 건강 다음입니다.”
“그건 알아요. 그렇지만 제 나이가... 성적이라도 잘 받아야 될 거 같아요. 시간이 늘 부족해요.”
“그렇긴 해요. 대학 사년 간의 성적표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다 잘하고 있잖아요.”
“인철씬 공부 잘 했겠지요. 좋은 학교에 근무하는 걸 보면.”
“공부도 공부지만 운이 좋았어요. 될래니까 아무 어려움 없이 취직이 되었어요. 집안 어른이 그 학교 이사장님과 잘 아는 사이거든요. 경남씬 운동을 좀 해야겠어요. 피곤하겠지만 시간을 좀 내 보세요.”
이제 긴장이 풀리는 걸까, 이제부터 시작인데 몸이 안 좋으면 큰일이다. 방학하면 그의 말대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방학하면 좀 해 볼게요. 근데 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내가 가르쳐 줄게요. 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은 할 줄 알아요. 무슨 운동을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게......”
“덥지 않은 아침 시간에 테니스를 해 볼래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괜히 인철씨 고생만 시키면 어떻게 해요?”
“아니에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꾸준히 하면 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재미도 있어요.”
그에게 고마워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지치지도 않고 주고 있다. 나는 늘 염치없이 이렇게 그의 사랑을 받기만 해도 괜찮은가. 나도 어떻게든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텐데, 지금의 나는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음날 그는 자정이 다되어 업소에 들렸다. 그리고 작은 곽을 하나 내밀었다.
“약보다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좋지만,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가 내민 것은 빈혈치료제 약이었다. 그리고는 앉지도 않고 돌아갔다.
누구에게도 이렇게 자상한 위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고마운 마음이 지나쳐 부담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피곤했지만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대학까지 뛰어갔다. 그가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그가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데는 거의 한 시간정도 걸린다.
처음 라켓을 쥐는 나는 요령이 없고 기운도 딸려 힘들었다. 이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땀을 흠뻑 흘리며 주저앉았다. 그는 그만 하자면서 처음이라 그렇지 곧 잘할 거라고 말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만나 운동하고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래야 내가 만들어 간 샌드위치에 우유가 고작이었다. 그걸 못 하게 하면 운동하러 나가지 않겠다고 우기는 내 고집에 그는 과일을 준비해 왔다. 방학이 끝날 때쯤 나는 한 시간 정도를 할 수 있었으며 제법 볼을 받아넘길 수 있게 되었다.
어둡고 쓸쓸했던 시간들이 아침햇살처럼 환하게 바뀌고 나는 하루하루를 기쁘게 열 수 있었다. 자리에서 눈을 뜨면 그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 피곤한 몸을 가뿐하게 일으켜주었다.
내가 공부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는 성적표를 그에게 보여주며 나는 기쁨을 그와 나눌 수 있었다. 나와는 다른 생각과 상황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예전 같지 않은 다정함을 지니고 대할 수 있게 된 나는 홀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덜 괴로웠다. 온통 시끄러움 그 자체인 듯 참기 어려웠던 시간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손님들의 모욕적인 언사나 유혹을 부드럽게 묵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둡던 나 자신에게서 서서히 벗어나며 사랑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느낌은 또 한구석에 절망감을 쌓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인철에게 향하는 것을 느낄수록 나는 내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려야 했다.
왜 그 순간을 기쁨 그 자체로만 느끼지 못하고 한쪽에서 뽀족히 고개 내미는 슬픔을 느껴야 하는지 괴로웠다.
나는 내색하지 않았으며 인철은 모르는 척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그토록 한결같은지 감동할 뿐이었다.
그가 친구들과 캠핑을 간 나흘간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누워서 나는 생각했다.
그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또한 함께 묶여질 수 없는 우리들의 내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나는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랑을 대책 없이 받아 왔고 그 책임을 어떻게 져야할지 난감했다. 혼자 힘들게 안간힘으로 버티던 생활을 그는 함께 들어주었으며 이제는 도저히 그가 없으면 지탱할 수 없을 것처럼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을 때까지만 그렇게 무조건으로 사랑을 주고 그것에 만족하고 떠날 것인가.
나는 그럴 수 있는가. 서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나는 그가 돌아오면 어렵겠지만 그에게 내 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의 생각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건 이별을 부를 것이다. 아직 나는 서둘러 이별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의 따스함에 취하여 깨고 싶지 않다.
그는 물처럼 스며들어 나를 용해하고 있다. 서서히 괴로움을 몰고 와 나를 침식시키는 것을 느낀다.
그가 돌아온 날 그는 업소로 날 데리러 왔다.
밤거리에서 우리는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였다. 그는 내 의사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나는 함께 있을 시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려웠다. 그는 내 집을 향하여 천천히 차를 몰았다.
우리는 물어보나 마나 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간의 보고 싶었음을 대신했다. 나는 그가 내 집에 들어가지 않기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만큼이나 바랬다. 해야 할 이야기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은 너무 늦었다. 그는 피곤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 날 바래다주고만 가게 하기는 정말 미안하다. 아니 그와 좀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말없이 열쇠를 돌렸고 그도 말없이 나를 따라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가스 불에 물을 올리고 돌아서는 나를 그는 안았다.
꼼짝할 수 없을 만큼 세게 안았다. 나는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맥없이 그의 품에서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의 강렬한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나는 영민의 내음을 떠올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영민이어야 하는 듯.
나는 그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몸을 떼며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인철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영민은 내 앞에 나서서 그를 막고 있었다.
나는 빨라지는 피돌기를 감추고 싶어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그는 웃으며 내 곁에 와 앉았다.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고개 숙인 채 한 손을 벌려 그에게 내밀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 맞추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를 막고 싶었지만 그를 대항할 수 없었다.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인철씨께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지......”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고개 젓는 내 얼굴을 그는 가슴에 안았다. 고동치는 가슴은 기어코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려 내 어깨를 떨게 했다.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말아요. 무엇을 해주고 싶어 하지도 말아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경남씬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난 족해요.”
그는 내 몸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에게 몸으로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내 육체가 그에게 기쁨이 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몸을 열고 싶었다. 그러나 한순간 그는 몸을 떼고 일어났다.
“물이 끓지요?”
일어서는 그를 말리며 밖으로 나간 나는 그의 냉정함과는 다른 강한 의지에 안도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쉬운 방법으로 부담감을 덜고자 했던 것 같아 죄스러웠다. 그러나 그에게로 밀착되는 억누를 수 없는 열정 또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흘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도 물었다. 그는 항상 밝고 환했다. 어둡고 슬픈 나와는 늘 다른 것을 느낀다. 그는 퍽 늦은 시간에 돌아갔다.
사 년간의 대학 생활은 마음껏 흡족함을 누리는 만큼 한편으로 고달프고 외로웠다. 낮과 밤이 다른 환경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느 편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여 힘들었다.
인철은 그 투쟁처럼 단단히 무장하고 버티어야 했던 시간에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나는 점차 내 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 모두를 의논하게 되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것이야말로 우리 두 사람이 나누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였지만 둘 다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행여 서로의 생각이 다를까 염려해서일 수도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둘 다 너무 바빴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형수가 재혼하던 날.
인철은 내게 오겠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갈 자리가 아니므로 그냥 웃으며 물었다.
“조카는?”
그는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어머니와 제가 키워요.”
“인철씬 결혼 안 해요?”
평범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 평범한 질문을 한 걸 금방 후회했다,
“해야죠. 때가 되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얼굴이다.
“형수가 잘 살길 바래요. 그래야 모두 행복할 수 있어요.”
나는 그 모두의 폭넓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조카를 데리고 있는 한 아이 엄마는 언제든지 아일 만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리라.
자식을 만나지 못하여 자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어머닌 조카를 돌보는 일을 즐거움으로 생각하셔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 아이가 태어나 어머니께 힘이 돼 주었지요. 형수가 아일 데리고 가지 못한 게 안됐지만 어머니께는 퍽 다행한 일이예요.”
그의 형수는 직장동료와 결혼했다며 남자 쪽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이라고 염려했다. 결혼은 당사자만의 사랑으로 이어 나가기에는 너무 큰 모험이었다.
방학도 휴일도 없이 우리의 만남은 도서관이나 운동장에서 갈증 나게 이어졌다.
나는 졸업을 맞았다. 두 번째 본 교사 임용고시에서 합격했다. 인철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창밖으로 조금씩 눈이 내렸다.
나는 무릎에 놓인 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꽃을 선물 받았다. 꽃은 점점 커져서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고개를 들었다.
영민이 졸업하던 날.
종일 그를 생각하며 회사에서 서성거렸다. 그날은 여느 날보다 바쁘지도 않았다. 바빠서 갈 수 없어 미안하다고 말해 놓았는데...
그가 보고 싶다.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철의 웃는 얼굴이 후딱 그를 밀어낸다.
내 졸업식이 끝나고 우리는 바다를 향해 떠났다.
머리 속으로 바닷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온다.
꽁꽁 묶어놓았던 심신이 사지 팔방으로 너펄거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뺨을 후리는 매서운 바람이 통쾌하게 눈물을 닦아냈다.
인철은 내 어깨를 안고 말없이 모래사장을 걸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더는 나올 눈물이 없을 만큼 오랫동안.
땅끝 해남까지 달리며 바라보던 아름다운 산야가 끝없이 눈물을 흘리게 했던 그때처럼 석양의 황홀한 바다가 나를 뒤흔들었다.
나는 내 옷들을 조용히 하나하나 벗었다.
내가 그에게 가리고 지켜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아름다운 그와 함께 기쁘고 싶었다.
밤새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깨어있었다. 나는 돌아가야 하는 여자인 것을 그에게 이해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내 지나간 이야기는 그것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었다.
5.
업소를 처분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지친 몸과 마음을 아무 생각하지 않고 버려두었다.
잠이 깨면 환한 창을 내다보았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포만감이 따스한 햇살처럼 방안 가득했다.
밝고 아늑한 그림 한 점이 함께 춤을 추었다.
인철이 사다 걸은 판화 속의 한 묶음 꽃이 온 벽으로 퍼져나갔다.
공부하는 내내 사지 못했던, 작은 책장이 함께 붙은 원목 책상이 벽을 장식했다. 집을 나온 후 처음으로 내게 한 큰 선물이었다.
다시 잠이 깼을 때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방안을 채웠다.
가난했던 어린 날들처럼 으스스한 한기를 느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1982년 12월.
육 년의 시간이 흐른 이제는 아이들을 찾아갈 수 있다.
큰애가 고등학교 이학년, 작은애가 중학교 이학년이다. 많이들 변했을 것이다. 날 거부하지 않고 만나줄지도 알 수 없다. 아무 일 없이 잘 컸는지도 알 수 없다. 어미인 것을 포기하고 그토록 애썼던 날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지 알 수 없었다. 훗날이라도 이 어미처럼 어른이 되어서라도 날 용서해 준다면 이 어려웠던 날들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새 학기부터 첫 출근을 한다.
나는 원하는 것을 해냈다. 이제는 내가 바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시간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을 버리고 나온 죄 많은 어미인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인철이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는 내가 처음 만난 인간다운 삶을 사는 자유인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찌해도 다 못 갚을 빚을 졌다. 그런데 그 빚은 괴롭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기꺼이 갚고 싶은 마음 훈훈한 빚이었다.
터널처럼 어둡고 암울한 시간을 한 줄기 빛처럼 숨통을 틔워주던 그는 이성의 의미를 넘어선 숭고한 사랑을 느끼게 했다. 그동안 살아온 혜택 받지 못한 삶을 그가 모두 보상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사랑을 베풀었다.
내 안에 고집처럼 버티고 있던 영민을 향한 슬픈 동경은 사라졌다. 따라서 경희에 대한 뼈아픈 자책도 함께 옅어져 갔다. 시간은 괴로운 흔적들을 어루만지며 아물게 했다.
인철은 지난번 바다에 갔을 때 말했다.
“당신이 이혼하고 나와 살기 원한다면 당신의 아이들과 나의 어머니, 그리고 조카까지 함께 살고 싶어요. 그러나 원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당신을 만나는 것으로도 만족해요.”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생각해 볼 수 없었다. 그 문제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아니, 돌아가야 할 가족들에게 속해 있는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외면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가 말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는 혼자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내가 바라던 단 한 가지를 해냈을 뿐이다.
나는 돌아가 그들에게 어떤 대가든 치러야 할 일이 남았다.
벌써부터 겁이 난다. 남편을 만나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만 만나면서 이대로 지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이기적인 안주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던 삶의 모습이 그렇게 나 자신에게 안일한 타협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 남편을 피하고만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어미로서 책임도 져야 한다.
내일은 아이들을 만나러 가자. 그리고 남편도 만나야 한다.
작은아이가 진학한 학교를 물어서 찾아갔을 때 그들이 이사한 것을 알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무실로 아이가 들어왔다.
선생님이 안내한 상담실로 들어가 아이와 마주 앉았을 때 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경아야......”
나는 딸의 이름을 부르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딸의 두 손을 잡았다. 나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흐느꼈다.
“아빠랑 오빠 모두 별일 없으시지?”
“아빠가 아파요.”
딸이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디가?”
“간이 안 좋으시대요. 한번 쓰러지셨어요. 작년 겨울에 회사 그만두시고 쉬고 계셔요.”
“곧 아빠를 만나볼게. 오빠 다니는 학교는?”
딸애와 헤어져 큰애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가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경아가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찼다.
딸은 예전보다 좀 마른 편이지만 키가 많이 자랐다. 이마에 송글송글 여드름이 몇 개 난 게 사춘기 소녀의 어여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착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공부도 상위권이지만 말수가 적어 엄마와 헤어져 지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저절로 ‘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얼거렸다.
커다란 남학생들이 우르르 내려오는 길을 올라가면서 나는 마음 졸였다. 경호는 어떻게 날 받아들일까? 그 앤 어떻게 변해 있을까? 경아는 오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을 하였다.
복도로 나온 아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곁눈질로 흘끔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불손한 태도에 가슴이 멎는 듯했다. 말없이 발끝을 문지르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는 터지기 직전의 폭발물처럼 위기감을 내뿜었다.
“왜 오셨어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미처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생각보다 훨씬 사태가 나쁘다는 것을 느끼며 가슴이 철렁했다.
“교문 앞에서 기다릴게. 종례 끝나고 만나자.”
“싫어요. 필요 없어요.”
나지막이 그러나 강하게 말을 내밷은 아이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다리가 휘청거리고 가슴이 요동쳤다.
‘그래, 네가 견디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어려움의 분노이리라. 용서해다오. 어미도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인생을 인정해다오. 네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날 이해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네 아비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 있는 어미 노릇을 하게 되었다. 나도 정말 힘들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던 것을 이해해다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싸늘한 바람과 함께 솟구치는 울음을 삼키느라 심호흡을 하고 또 했다. 어떻게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어쩌면 남편과의 이질적인 인연보다 더 무서운 벌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아이는 나를 뿌리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정신 나간 여자 모양, 시커먼 가스를 토해놓고 떠나는 버스를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운 자식에게 거절당한 모멸감이 나를 내 의식 속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고통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처럼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다시 학교로 올라가 담임선생님을 만나 문제가 심각한 것을 깨달아야 했다. 아이가 퇴학당할 뻔한 일을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은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아이에게 가능성이 있음을 설명하셨다. 가정적인 욕구불만이 그를 반항과 좌절로 이끌고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이 누적되어 이렇게 된 것을 이해하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이미 불량한 학생이 되어버린 아이에게 애정 어린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수없이 ‘죄송합니다’를 반복했을 뿐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편에서 그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애정입니다. 공부는 다음 문제입니다. 그 애가 할 수 없는 것은 요구하지 마십시오. 지금 경호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은 가정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안다는 듯 별로 묻지도 않고 선선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허탈감에 주저앉았다.
나의 부자유스러운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그들을 떠나있었던 시간 동안에 나는 그래도 희망을 지닐 수 있을 정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만든 부자유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기꺼이 견디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덫에 걸린 듯 답답하게 조여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아들은 나의 부재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남편으로 인해 괴로웠던 내 삶은 변한 것이 없는, 그때처럼 뛰쳐나올 수도 없는 상황을 불행하게 인식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돌아가 내가 누린 자유,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자유로움이었다. 그 자유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수록 나는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흐르는 눈물처럼 체념은 나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고 있었다.
인철을 만났다. 나는 내가 만난 아이들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내가 빨리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이해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대로 살아가는 일은 서로를 더 그리워하게 할 것이다. 언젠가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에게 나를 나누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길 빌었다. 언젠가 행여 그가 곤경에 처한다면 나는 만사를 제치고 그에게 달려갈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를 그는 변함없이 안아주었다.
‘사랑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기쁘기 때문이다. 당신을 안을 때 내가 기쁘다’고.
나는 그의 품에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이 세상 모든 인연들 속에서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이렇게 순수한 한 영혼을 만나게 한 신은 또 무엇으로 나를 시험하고 싶은 건지 묻고 싶었다.
왜 빛은 그 자체로서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만 빛이어야 하는가.
나는 그와 함께 살고 싶다.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 그에게 필요한 모는 것을 해주면서 나도 함께 아름답고 싶다. 그러나 지금,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불행한 내 삶에 빛처럼 그가 존재하지 않는가. 내 영혼을 부드럽게 싸안은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순수함 속에 우리가 있다.
내가 가족에게 돌아가도 그와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의 진정한 사랑을 받는 행복한 인간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내 곁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자고 있는 그의 얼굴이 무심하게 서서히 드러난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그 몸을 안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간을 잠들 수 없었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감촉을 느끼면서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일찍 일어났군요.”
그는 내 가슴에 머릴 묻으며 졸린 듯 천천히 말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다 잘해 낼 거에요.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요. 내가 도와줄게요. 다 잘 될 거야. 아이도 나아질거구,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고 당신은 아일 사랑하잖아요. 철들면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할거에요. 나는 당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나는 그의 숱 많은 머리에 입을 맞추며 신께 감사했다.
불안함도 안타까움도 그의 너그러운 사랑으로 덮어지고 가슴 가득 슬픈 희열이 차올랐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맑고 투명하게 새벽공기를 가르고 하루를 시작하는 분주한 움직임들이 창을 열었다.
6.
나는 용기를 내어 남편을 만나러 갔다. 그가 어떤 해결을 원할까 생각하면서 불안해지는 자신을 다독거리길 수없이 했다. 출근 못할 정도면 그의 병세는 심각한 모양이다.
나무가 많은 동네였다. 삼성 빌라라고 이름 붙여진 연립주택 마당에 들어서자 몇 그루의 나무가 보기 좋게 어우러져 그늘을 드리웠다.
그가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놀라서 심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문을 열어놓은 채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아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문을 닫고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용서해 주세요. 그동안 공부를 했어요.”
“......”
그는 진정되지 않은 듯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경호랑 경아를 만났는데 말하지 않았나 보군요.”
그때서야 그는 눈물이 글썽하여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병색이 완연했다. 낯 색이 어두워지고. 건장했던 몸이 수척해져 있었다.
“왜 돌아왔지?”
“......”
“날 비웃고 싶어서 온 거야? 이제 이혼이라도 해달라고? 어디서 무얼 하다 나타난 거지? 내가 죽기라도 바랬나?”
그는 이미 날 분노하지 않게 할 만큼 초라했다.
나는 예전과는 다른 힘없이 느껴지는 그의 비난을 멈추기 위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더 이상 흥분하지 않고 조용해졌다. 그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당신과 살려고 왔어요. 며칠 있으면 출근해요. 당신과 아이들을 돌보겠어요. 날 용서해 주세요.”
나는 그가 멸시해 마지않던, 경제력 없는 여자가 아닌, 이제는 그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되어 또다시 힘들게 이 가정을 지켜나가야 했다.
시어머니가 오시자 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이미 각오한 것이지만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모욕감을 꾸역꾸역 참으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를 끝도 없이 해대는 것을, 보다 못한 남편이 악을 쓰듯 그만하라고 저지했다.
나는 참느라고 너무 힘들어 탈진한 느낌으로 그들에게서 풀려났다. 짐을 정리해 오겠다고 나서자 남편은 금새 불안한 얼굴빛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내일 다시 올 것을 약속했다.
집주인에게 곧 나갈 수 있도록 부탁하고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꾸렸다. 내일 아침 일찍 남편에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혼자 보내는 마지막 밤은, 비통함으로 가득했다.
뜨거운 모래밭을 걷는 낙타의 무리처럼 묵묵히 걷고 또 걸어가야 했다.
시어머니는 시골 형님네 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자 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자던 방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은 당혹한 얼굴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는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딸애의 방으로 갔다.
“엄마, 내가 바닥에서 잘게요.”
딸애는 베개를 가슴에 안고 서서 웃으며 말했다.
“널 안고 같이 자고 싶은데 싫으니?”
나는 아이의 성숙한 몸을 싸안고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내 가슴에 머릴 묻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경아야, 미안해. 네가 이렇게 곱고 착하게 커 주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엄마 원망 많이 했지?”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엄마가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요. 영영 우릴 버리고 떠난 줄 알았어요. 꿈만 같아요.”
우린 숨이 막히도록 서로를 껴안았다. 그토록 쓸쓸했던 가슴이 눈 녹듯 풀어져 나갔다.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커다란 조개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찬란한 빛의 조개가 서서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뛰어나오려고 아무리 애써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점점 다물어지는 조개 속에서 버둥거리다 비명을 지르며 깨었다.
“왜 그래요? 엄마, 나쁜 꿈 꾸었어요?”
“아니야, 괜찮아. 더 자.”
나는 선연한 꿈속의 기억을 지우며 진땀이 흐른 내의를 벗었다.
어쩌면 떠날 때보다 더 못한 곳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젯밤 딸애를 안고 자면서 이곳이 내가 돌아와야 할 곳이었다는, 돌아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였다. 소중한 어린 생명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냥 부모이므로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는 일상적인 생각 이상의 강렬한 느낌으로 나를 사로잡으며 충만한 느낌을 부여했다. 그러나 경호의 저항은 냉정하게 계속되었다. 단 한 번도 내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쿵당거렸다. 그 아이의 태도는 불손하여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력감을 느낄 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먹고 싱크대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흘겨 뜨는 곱지 않은 시선을 따갑게 의식하면서 그릇들을 정리했다.
“그건 거기 그냥 둬!”
시어머니의 내지르는 목소리가 내 손을 멈추게 했다.
멀찍이 앉아 바라보고 있던 시어머니는 급하게 달려와 내 손에서 그릇을 낚아챘다. 참견과 저지가 가끔씩 일손을 멈추게 했다.
그때마다 신문을 읽던 남편이 일하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일거리가 많은 것이 고마웠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아이들 방을 청소했다. 내가 사주었던 물건들이 낡고 빛바랜 채로 모두 있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내가 떠나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구들의 먼지와 때를 닦아내면서 지나간 시간이 떠올랐다.
남편은 그의 아이를 지웠다고 하던 젊은 아이와 함께 살지 않았다. 곧바로 시어머니께서 올라와 살림을 맡았다. 경아의 말에 의하면 엄마가 나가고 난 이후 아빠는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오히려 술도 덜 드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쉬는 날도 집에 계시지 않아서 아빠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은 걸까?
집안 가득 침체된 느낌 속에서 유독 시어머니의 기세는 당당하고 억세게 느껴졌다. 시골 살림의 경제권을 큰며느리에게 내놓았던 차에 서울에서 자신의 필요를 알리는 둘째 아들의 부름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불어넣었느지 모른다. 이 가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식할 때마다 어머니는 힘이 솟았는지 모른다.
혼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시집온 며느리라고, 자신들의 수다스러움에 참여하지 않는 무심함을 미워하며 적대시해 온 며느리의 부재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빨래감을 안고 거실로 나온 나는 시어머니가 그의 등을 긁어주는 것을 보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녀가 살아 계시는 동안은 내가 남편에게 해야 할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불편도 주지 않고 조용히 아이들의 엄마로 있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가 돌아오지 않고 어미 노릇을 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사랑하기 위해서는 돌아와 무엇이든 그들을 위해 희생을 치루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어린 그들의 상한 마음을 달래고 그들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이는 자책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인철을 사랑하며 그의 가족들과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 속해서 늘 기웃거려야 하는 이곳의 내 자리를 지울 수 없기에 돌아왔다.
처음 내가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내게는 그것이 지켜야 할 자존심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아침상을 차렸다.
점심에 먹을 반찬을 몇 가지 냉장고에 넣어놓고 가족들을 깨웠다.
“어머니, 아침 드셔요.”
나는 방문 밖에서 말했다.
“먼저 먹고 가거라.”
시어머니가 문도 열지 않고 쌀쌀맞게 말했다.
아이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아를 깨우고 경호방을 노크했다. 대답이 없다.
“경호야.”
손잡이를 돌려 보았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경아와 앉아서 밥을 한술 뜨는데 눈시울이 뜨겁다.
“오빤 아침 안 먹니?”
“예, 그냥 가요.”
“너도 그랬니?”
“밥맛이 없어서...”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지 않고 줄곧 학교에 다녔나 보다. 좀 마른 아이들이 그래서인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경아 방에서 가볍게 화장을 했다. 화장이래야 약간 붉은 루즈를 바른 정도였다. 새로 산 투피스를 입은 나는 안방 문을 노크하고 인사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깡마른 남편이 일어나 현관까지 나왔다.
나는 그를 한번 바라보고 길로 나섰다.
경아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경아가 나를 보고 환히 웃는다.
처음 볼 때의 얼굴과는 다른, 볼에 분홍빛 생기가 있어 마음이 기뻤다.
교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칠판에 내 이름을 쓴 후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새롭게 시작한 이 일에 무한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정말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이 호기심에 가득 차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들 앞에 설 때까지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그만큼 너희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한 학기 동안의 수업 안내를 했다.
퇴근 시간 전 인철이 전화했다.
나는 간단히 그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이제는 그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와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곳에 속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그와 나는 사랑할 것이다. 나는 예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그가 그립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내 온 몸을 뒤흔든다. 나의 이러한 사모하는 마음은 분명히 그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강렬한 기운이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동료 교사와 함께 교문을 나서는데 인철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랬어요? 온다고 하면 보나 마나 거절할 것 같아서 그냥 왔어요.”
나는 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정말 활짝 웃었다. 너무 반가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잘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첫 출근을 축하해주고 싶었어요. 야! 이렇게 예쁠 줄 몰랐는데...”
그의 농담에 얼굴이 붉어졌다.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모든 게 새로워요.”
“가족은, 지낼만 해요?
“예, 괜찮아요. 큰 얘가 좀 힘들지만, 차차 나아지겠지요.”
인철이 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쥔다.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그는 나를 도와줄 것이다. 내가 참을 수 없을 때 나를 바라보는 그가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인철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의 다정한 얼굴을 본 것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싱크대에 설거지 그릇들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시어머니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식사 준비를 했다.
여덟 시경 식탁에 모두 앉았다.
경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 말없이 식사했다. 그 무거운 분위기가 불편했지만 나 역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들 대신 말하는 TV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웃겼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집안일을 모두 하고 앞치마를 벗었을 때 경호가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저녁은?”
아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제방으로 들어간다.
그 아이는 가족들을 모두 무시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의 어미이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조심스러움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분명 잘못된 관계인 것을 인식할 뿐이었다.
나는 오늘 아이들 앞에서 기도했다. 내 인생에 놓친 부분들이 헛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축복했다. 이 귀한 생명들 앞에 선 나의 행위가 숭고하길 빌었다. 또 내 아들의 원망과 분노가 사랑으로 치료되길 빌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참을 것이다.
남편의 통증이 날로 심해갔다.
집에 돌아오니 경아가 울면서 입원한 병원을 알려주었다. 그의 병명은 간암이었다. 그는 좋다는 건 다 찾아다니면서 먹는 건강 제일주의였지만 그의 이어지는 과음은 도를 지나쳤고 급기야는 생명의 지장을 가져왔다. 아니 어쩌면 그 역시 그의 내면에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싸안고 힘겨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도울 수 없었던 것처럼 그는 스스로에게 굴복당하고 이렇게 죽음 앞에서 처절히 몸부림쳤다.
어머니는 남편을 부등켜 안고 울부짖었다.
“다 네년 때문이야, 응, 네년이 내 아들을 이 꼴로 만들었어! 이 나쁜 년아!”
“제발 그만 해요.”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남편이 어머니를 확 떠밀었다.
“아니, 이놈이! 에밀 치네. 그래 그렇게 돌봐주었더니, 저 알량한 년 역성을 들어. 자식새끼 다 소용없다더니 옛말이 하나도 안 글러!”
그녀는 바닥에 털썩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경아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창밖에 여릿하게 움트는 나무들이 어스름 저녁 그늘에 가려지며 한 떼의 작은 새들이 그 위를 날아오르고 있었다.
나의 삶이 이 모양인 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모두의 불가항력에 의해서였다. 나는 경아의 어깨를 껴안고 쓸쓸한 가슴을 달랬다.
시어머니가 훌쩍거리며 나왔다. 나는 얼른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쏟아졌다. 남편의 통증이 진통제에 의해 서서히 진정되었다. 그의 두 눈가에 눈물이 번질거렸다.
나는 이제 그에게 미움 같은 건 없었다.
다른 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받음으로 다시 이 가정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병에 시달리는 그는 용서 이전에 측은함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상해가는 그를 사랑해야 함을 인식했다.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땀이 축축하게 나고 힘이 다 빠진 손이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어머니와 경아를 집으로 가게하고 나는 그의 곁에서 밤을 새우며 졸았다.
그는 새벽녘에 또다시 지독한 통증으로 모든 사람을 깨웠다. 그의 손아귀에서 내 손은 부서질 듯 아팠다.
의사가 오고 다시 진통제를 놓았다. 나는 간호원에게 병실을 바꾸어달라고 신청했다.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괴롭게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께 전화하여 오시게 하고 학교로 출근했다. 머리가 무거웠다.
수업이 끝났으나 학기 초라 모두 바쁘고 눈치가 보여 조퇴할 수 없었다. 아니 어머니가 계시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용을 어떻게 장만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금방 바닥이 날 것이고 집을 처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은행에 가서 예금했던 돈을 모두 찾았다. 당분간은 버틸 것이다. 보험으로 되지 않는 비용은 수시로 청구될 것이다.
경호는 오늘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남편과 나 모두에게 냉담했다. 어머니를 나가게 한 아버지라는 이유로 남편을 더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모를 미워하면 할수록 그 아이의 마음은 상해갔을 것이다. 미움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또 어떤 합당한 이유를 갖고 있든 당사자를 더욱 상하게 할 뿐이다. 경호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심의 골이 완전히 치유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나의 부족함은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렇게 아이를 망가뜨린 것이다.
독실로 온 남편은 눈을 감은 채 내게 말했다.
“날 용서해 줘. 정말 당신한테 미안해... 난 살고 싶어. 날 살려 줘... 병이 나으면, 당신에게 그동안 잘못했던 것 다 갚을게. 꼭 다 갚을게.”
그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가 나을 것이라고 꼭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의사의 말과 상관없이 그는 기적처럼 살수도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의 삶에 무관한 타인에 불과하다. 다만 그의 심신이 어떤 모양으로든 안정되길 바랄 뿐이었다. 이미 그와 내가 이루었던 가정은 상처로 얼룩져버렸고 우리는 서로 다른 길에 서서 아득하게 멀어진 상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선택한, 떠밀리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것이 아닌, 내 의지로 선택한 삶 속에 있었다. 밖을 동경하며 가슴 아팠던 그런 날들이 아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하고 싶은 일들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있었다.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존재들이 내 곁에 있었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 했으며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며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미 내 남편을 용서했으며 내 아들에게 용서받을 일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애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방황과 반항으로 후회할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 애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두껍고 높은 담을 허물고 부모 자식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애에게 바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자정이 다 되어 집으로 전화해 경호를 바꾸라고 했다.
“경호야, 내일은 꼭 병원에 왔다 가.”
“......”
“경호야, 엄마 말 듣고 있어?”
“왜요? 죽기 전에 한 번 보라는 거에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되어서 이제 속 시원해요?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요. 엄마는 그럴 자격 없어요.”
“그래, 그렇지만 경호야, 정말 후회할지도 몰라. 그러니 내일은 꼭 병원에 들려.”
경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거칠게 수화기를 놓았다.
경호가 나름대로 생각하고 확신했던 우리들의 관계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게 쏟아지는 이 미움과 증오를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그 아이의 미움이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까.
경호는 자신의 잘못된 반항과 절제하지 못한 충동으로 인한 불성실을 내게 덮어씌우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살 때도 다정한 대화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애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
내 품에서 떠나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그 애는 내 간섭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아직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행위를 그 애는 혼자서 하겠다고 떼쓰곤 했다. 사내애가 여자애보다 돌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런 점에서 경아보다 몇 배 더 힘들고 지치게 했다. 그 막무가내의 고집은 사고의 연발이었으며 때론 내게 무력감마저 느끼게 하였다.
한번은 경아가 울면서 뛰어 들어와 오빠가 싸운다고 하기에 달려 나가니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옆집 아이를 물고 늘어졌다. 어린것이 어떻게 그악스럽게 구는지 기어코 내게 얻어맞고서야 떨어졌다. 마구 발을 구르며 울음을 터트리는 그 애를 버려두고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옆집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야 했다. 두 살이나 위인 그 애는 상처를 치료받은 후 아예 경호 곁에는 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애 부모에게 거듭 사죄하며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 사건은 아이들 사이에서 경호를 무서운 아이로 인식시킨 듯 그 또래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초등학교 때도 그렇게 몇 번을 싸움질로 학교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아들의 난폭하고 지배적인 성격은 분명 아비를 닮은 것이다. 그 대신 그 아이는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일을 아예 내게 말도 안 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심 강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는 난폭하게 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슨 일이나 그 애가 하라는 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그 애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딸애는 오빠에게 늘 온순하게 대했고 오빠가 건들지 말라는 물건은 아무리 어린 나이에도 건들지 않았다.
내게 그 물건을 가르치며 끙끙거리는 그 애에게 하나 집어주면 도리질하면서 피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거칠은 오빠를 경계한 것이다.
나는 딸애가 아쉽지 않게 따로 그 애만의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마련해주었다. 아무튼 그 애들이 집에서 다투는 일은 보지 못했다.
나는 자라면서 동네 애들과 싸운 기억이 없다. 아니 나가서 놀 시간이 없이 동생들을 돌보는 일에 바빴기 때문이다. 동생들끼리 싸우는 것이 싫어 아예 셋째를 업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동생들은 사사건건 옥신각신 다투며 자랐다. 먹을 것, 입을 것을 갖고 다투었으며 내 학용품을 집어 가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학교에 가서 필통을 열어보면 연필이 한 자루도 없었던 일도 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짝에게 연필을 한 자루 빌려 쓴 후에는 아예 책상 속 깊숙이 연필을 한 자루 감추어 놓고 다녔다.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것이 많은 가난 때문이었겠지만 그래도 동생들은 부모나 손위 형제를 생각할 줄 몰랐다. 고단하고 살기 힘든 부모의 교육적인 배려가 없는 무지한 농촌 생활은 자식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가난 이외에 또 업신여김받는 것이 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우리 부모와는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랐으며 그분들의 칭찬은 내 생활의 양식보다 배불렀다.
책상 서랍 속에 상장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며 나는 학교생활을 즐겁게 했다.
새 학년이 되어 첫날 ‘야! 경남이가 우리 반이구나.’ 환하게 반기시던 담임선생님들의 얼굴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분들은 내게 친절했으며 전적으로 내게 신뢰감을 보여주셨다. 부모의 사랑 대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나의 유년 시절은 그런대로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민, 늘 내 마음속을 따스하게 하던 그의 다정한 눈빛.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영원히, 완전하게 경희가 차지한 그는 슬아와 잘 살아가고 있겠지.
이제는 내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은 나의 첫사랑.
인철을 보지 못한지 한 달이 지났다.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주기만 한 그에게 나는 아무것도 주지 못한 채 이렇게 다른 남자에게 속하여 병든 밤을 지키고 있었다.
인철은 내가 남편에게 돌아가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선선히 말했다. 자긴 괜찮다고 했다. 그를 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며 웃던 그의 얼굴은 세상에 어떤 사람보다도 내게 아름답고 고귀했다.
내가 아플 때 그는 날 지켜주었다. 나의 고통을 그의 것 인양 아파했다.
내가 출근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부모라도 된 듯 기뻐했다.
내가 즐거우면 자신도 즐겁다 말했다.
그를 내게 보내신 신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사랑은 가물어 갈라진 땅에 단비처럼 내 가슴을 적시고 나를 기름진 토양이 되게 하였다.
나는 죽는 날까지 그를 사랑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내 가슴에 그는 아름답게 존재할 것이다.
만나지 않아도 내 마음에 가득 그가 있다.
내 안의 그는 슬픔도 괴로움도 없이 평화롭게 존재한다.
물론 그에게 다른 친한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내게 그런 기미나 언질을 한 적이 없으며 나는 그의 자유를 구속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가 날 사랑하는 것을 믿으며 나 역시 그를 더할 수 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떠나간다 해도 나는 그를 진심으로 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욕심낼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을 받은 내게 그는 자유 그 자체였다.
그가 내가 원한 대로 사랑했듯이 나 역시 그가 원하는 대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분주하고 낯설었던 새 학기가 지나가고 학기말 시험이 시작되어 일찍 학교 문을 나섰다.
나는 서점에 들려 딸에게 줄 책과 내가 읽을 책 두 권, 인철에게 줄 도서상품권을 열 장을 구입했다.
정말 오랜만에 인철을 만나기로 했다.
쇼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은 활기차고 보기 좋았다.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기운을 인철은 금방 느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힘차게 포옹하는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눈빛 속에 두 사람의 강렬한 밀착을 유감없이 바라보며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 내가 물었다.
“잘 지냈지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정말 예쁘네요.”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이 붉어져 얼른 커피를 주문했다.
우린 그간의 생활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 그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그는 기뻐하며 받았다.
그가 안스러워 하는 기색 없이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자 나는 행복했다.
내가 그를 즐겁게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몰랐다.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그동안은 염치없이 당신의 사랑을 무조건으로 받기만 했어요. 이제는 내 땅에서도 실한 수확물들을 거둬들여 당신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도와준 농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우리는 잔잔한 수면이 평화로운 강가의 한 산장에 들어가 서로의 육체를 안았다.
오랫동안 잊었던 욕정은 불붙은 듯 타올라 우리의 존재를 완전히 잊게 했다. 이 세상의 온갖 시름과 고뇌를 불사르고 우리들의 영혼을 투명하게 하였다.
나는 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신은 나 자신의 신념,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인철은 내게 수없이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와 함께 바라보던 일출 그 장엄한 광경 속에서 나는 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지금처럼 그의 충만한 사랑 속에서 내 몸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희열 속에 있을 때 나는 그에게서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슬픔과 고통을 나누어 감싸 안은 그가 내게 신과 다름없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 나는 신의 은총을 느끼며 무한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앙심이란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나도 그러한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었다.
창밖에 어둠이 내리기 전에 서둘러 도심 속으로 돌아온 나는 집에 들어서기 전 깊은 심호흡을 하면서 내 몸 전체를 흐르는 이 밝은 기운을 걷어내야 했다.
여자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기운을 순식간에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은 그러잖아도 미운 내게 시시때때로 공격의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나는 또 다른 적을 맞아 대항해야 하는 곤경에 처해졌다.
아이들 앞에서 ‘어미란 년이!’ 하면서 이어지는 폭언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하곤 했다. 어떤 말이나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는 억지를 부리는 그녀에게 사실상 방법이란 게 있을 수 없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어미를 묵묵히 참는 것으로만 대신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의 분노는 터무니없었다.
가난하여 혼수를 해오지 못한 며느리, 그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업신여김은 매달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생활비를 보내는 일로는 무마되지 않았다.
가난한 내 친정과 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 새나가겠는냐는 그녀의 짐작은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하였다.
나의 가출을 시점으로 그녀의 미움과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고개 드는 속 시원함은 그녀를 아들에게 강하게 밀착시켰을 것이다. 그녀는 아들이 새장가를 가길 바랬을 것이다. 자식들은 당신이 돌볼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새 여자를 얻으라고 부추기고도 남을 이였다.
“어딜 싸다니다 이제 와!”
방문을 여는 내 뒷통수를 때리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나는 시계를 보았다. 평소보다 한 시간쯤 늦었다.
따발총처럼 퍼부어질 폭언에 나는 재빨리 마음의 문을 모두 꼭꼭 닫았다.
행여 어느 한쪽이라도 열려서 참을 수 없는 나를 드러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건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나로서는 단단히 무장해야만 했다.
시어머니는 내 밝은색 옷을 트집 잡아 욕했고 당신 입맛보다 싱거운 음식 맛을 타박하며 싱크대에 음식을 쏟아 부었다. 아들 옆에서 밤잠을 설치는 정성을 위세 떨며 내가 딸의 방에서 편히 잔다고 세상에 몹쓸 년이라고 욕했다. 그녀는 입원 첫날 단 하루뿐, 내가 당신 아들 곁에서 밤을 보내길 허락하지도 않았다.
“아주 신이 나서 돌아다니는구나. 아예 경호 애비 빨리 죽기를 빌고 다녀라. 망할 년 같으니.”
그녀의 독기 어린 목소리는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다.
나의 침묵은 그녀를 더 성나게 하는지 아예 방문 앞까지 쫓아 와 문지방을 딛고 서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뭐라고 대꾸하면 대뜸 ‘시끄러워 이년아!’ 하면서 손찌검하는 그녀를 나는 그저 죽었습니다.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스스로 맥이 빠져야만 그만했다. 아무리 퍼부어도 반응 없는 상대에게는 훨씬 빨리 기운이 떨어지는 것이다. 조금만 이대로 참으면 그녀는 자신이 먹을 음식을 싸 들고 병원으로 갈 것이다.
경아가 한번은 내 편을 들다가 심한 악다구를 겪고 나서는 아예 내다보지도 않았다.
“엄마, 할머니한테 무조건 당하지만 말고 무슨 말이든 해. 더는 그렇게 못하게 막아 봐.”
딸은 자신이 모욕당한 듯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엄마한테 왜 그래요. 할머니, 제발 그러지 마세요.”
“오, 네년이 엄마 역성을 드는구나. 지 에미 없는 동안 그리 보살펴주었건만 다 소용없어. 아이구, 내가 미쳤지. 그래 니들끼리 잘들 살아라. 나쁜 년들!”
그녀는 병원에서 이틀간 집에 오지 않았다.
경아에게 할머니를 모셔오자고 했다. 싫다고 하는 경아에게 말했다.
“할머닌 우리보다 약자야. 그분은 늙으셨고 아빠가 돌아가실까 봐 겁이 나서 그러셔. 내가 없는 동안 너희를 보살펴주신 것을 생각해서라도 무조건 고개 숙이고 그분을 서운하게 하지 말자. 네가 집에 가시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오실 거야. 늙으신 분이 많이 힘드실 거야.”
나는 경아와 함께 병원에 갔다.
남편은 검은 낯빛으로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돌아앉은 시어머니 앞에 싸 온 음식을 펴놓았다.
그리고 경아에게 눈짓했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식사하시고 함께 집에 가요. 오늘은 집에 가서 주무세요. 그러다 할머니 병나시겠어요.”
경아는 애써서 공손하게 말했다.
“그래요. 어머니, 오늘은 집에 가서 주무세요. 오늘은 애들 엄마가 있었으면 해요.”
남편이 눈을 감은 채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슬며시 물 주전자를 가지고 복도로 나왔다.
어두운 창밖에 둥근 달이 환하게 떴다.
한 떼의 새무리가 날아간다.
아름다운 저 날갯짓으로 어디까지 가는 걸까?
신이여, 다음 세상에 또 내가 나야 한다면 저 하늘을 훨훨 나는 한 마리 새가 되게 해 주세요.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가벼이 이 하늘에서 저 하늘로 오가는 새가 되게 해주세요.
건물마다 네온사인 불빛과 수많은 자동차 불빛이 거리에 가득 흐른다.
집을 담보로 빌린 은행대출금도 바닥이 났다.
그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는 또 어디선가 돈을 빌려야만 된다. 어떡할까, 누구에게 돈을 빌릴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며 막막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었다.
“엄마, 할머니 식사 다하셨어요. 물 이리 주세요.”
경아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잠든 듯 조용하다.
딸과 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의자에 앉아 벽에다 머리를 기댔다. 피곤이 나른하게 밀려왔다.
남편이 죽었다. 미친 듯 통곡하던 시어머니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아들 경호가 나를 쓰러뜨려 가슴을 타고 앉아 마치 목이라도 조를 듯 그 애는 두 손을 쳐들고 소리쳤다.
‘왜 돌아왔어요! 무엇 하러 온 거야. 한번 갔으면 그만이지 무엇 하러 왔어. 아빠는 엄마가 죽였어요. 할머니도 죽었어. 살인자!’
‘아냐, 그렇지 않아! 나는 내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너희들, 내가 낳은 너희들을 버릴 수 없었어. 내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야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어서 그래서...’
‘거짓말,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잖아. 그건 위선이야. 가! 가라고! 필요 없으니 가버려!’
‘아, 제발 경호야! 이러지 마. 나는 최선을 다했어. 네게 비난받을 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목을 이리저리 피하며 소리쳤다.
“여보! 여보! 왜 그래?”
그가 나를 흔드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며 잠에서 깼다.
‘여보’라고 부르는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식은땀이 흘렸다.
나는 눈물이 가득하여 나를 들여다보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쭉정이가 되어버린 그.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며 사위어가는 생명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야윈 등을 감싸 안았다.
측은지심.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모두 슬픈 존재들인지 모른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어린아이처럼 착해지기도 하는 인간들에게 씌워지는 운명의 굴레를 알 수 없는 슬픈 존재들이었다.
그의 기운 없는 마른 팔이 내 몸을 안으며 말했다.
“당신이 돌아와 줘서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러나 나는 살고 싶어. 이제부터 제대로 살고 싶어 당신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 당신에게 못되게 군 거 갚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고 싶다. 그런데 죄가 너무 깊은가 봐. 너무 힘들어.”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그가 처음 나를 사랑하여 결혼하길 청했던 때 그의 얼굴에는 이런 순함이 있었다. 이것이 그의 본모습이었을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 들끓던 욕망이 그를 가리고 마침내 그를 집어삼킨 것일까?
그는 참회하듯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를 떠보았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당신을 편하게 하겠지...”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위로 같은 것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사색이 완연한 그에게 그냥 진실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생사와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거짓으로 그를 위로하여 그에게 생에 애착을 가증시키는 일은 더욱 그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다시 그에게 심한 통증이 몰려오면서 그는 발버둥 쳤다.
나는 간호원을 불러 진통제를 투여하게 했지만 이제 약물은 그를 돕지 못했다. 밤새 거의 한잠도 이룰 수 없을 만큼 그는 고통스러워했다.
새벽녘 잠들은 그는 마치 죽은 듯 고요했다.
엉망으로 구겨진 침대 위에 상할 대로 상한 육신에 갇혀서, 가슴에 귀를 대지 않고는 그의 숨소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탈진한 채 간신히 살아있었다.
나는 시트 한구석 손댈 수 없는 절박함에 짓눌려 가만히 병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애빌 어떡하고 내가 가기 전에 왔냐?”
소리 지르는 시어머니를 뒤로 잠자코 방으로 들어와 이불 위에 쓰러졌다.
“잠들면 안 돼. 출근해야 해. 십 분만, 십 분만 있다 일어나자.”
잠 속으로 빠져드는 의식을 다잡으며 중얼거렸다.
병가를 내고 싶지는 않다. 학교에 가야 해.
나는 벌떡 일어나 눈을 감은 채 더듬더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시험감독이 끝난 후 점심도 먹지 않은 채 양호실에 가 누웠다.
얼마를 잤는지 퇴근하라며 깨우는 양호교사의 목소리에 일어났다.
다음날 남편은 경호를 찾았다.
경호가 집에 안 들어온 지 사흘이 되었다.
나는 경호의 학교로 찾아갔다.
경호는 학교를 안 나온 지도 사흘이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경호와 친하다는 애를 대신 데리고 오셨다.
“경호 어디 있는지 나도 몰라요.”
완강히 부인하는 애에게 간절히 부탁하였다.
“경호 아빠가 위독해서 그래. 어디 짐작가는 데 있으면 알려 줘. 내가 찾아볼게. 어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데 아빠가 경호를 찾아서 그래.”
경호는 그날 소식이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어 했다.
끝끝내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던 그는 내게 말했다.
“그 애를 때린 걸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 내 잘못이라고 용서를 빌고 싶어서... 미안해... 당신한테 미안해...”
아우성치던 격렬한 통증이 그의 육체를 산산조각 내면서 힘없이 그의 손이 떨어졌다.
나는 식어 가는 차가운 손에 얼굴을 묻고 그의 명복을 빌었다 .
이렇게 사라지는 한목숨, 우린 왜 그렇게 많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가. 나는 그에게 돌아왔지만 그는 이제 내게서 떠나갔다.
꽁꽁 묶었던 나를 죽음으로, 뉘우침으로 풀어주었다.
나는 그에게서 놓여났지만 다시금 옥죄는 또 다른 그를 기다린다.
아비의 죽음 앞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냉정한 그의 아들 경호. 어쩌면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주 새롭게 더 큰 힘으로 나를 단단히 묶어놓고 떠난 것이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루고 며칠이 지난 후 경호는 집에 돌아왔다.
이미 알고 있는 듯 아비의 죽음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아이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그 애가 입을 열기 전에는 아무 말도 먼저 할 수 없을 만큼 경호는 완강한 어떤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미성숙한 그의 내면과는 달리 이미 성숙해진 육체를 성인처럼 버티고 과시하였다. 그간의 헤어져 산 시간의 공백은 어미로서의 내 자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무어라 말한들 그 말이 경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섣불리 건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나을 것이다.
그 애도 언젠가 때가 되면 알 것이다. 우리 모두에 대해서 이해할 것이다. 뒤늦게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런 것이 어쩜 운명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7.
화창하고 희망찬 봄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잠시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셨다.
전세도 아닌 월세로 집을 옮기면서 집을 처분하고 조금 남은 돈을 모두 드렸다. 그녀는 더는 군소리 없이 내게서 물러났다.
아마 나는 영원히 집 같은 것은 지니고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데 내 소유의 집이 없다는 것은 전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직업은 세 식구가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다.
더 큰 빚을 지지 않은 것만도 남편에게 고마웠다.
나는 아직 젊고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경호가 돌아오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그 애는 내 앞에 흰 봉투를 내밀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 그 애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학교를 자퇴하겠어요. 이건 다음 달 월세예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금방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생활비 걱정은 하지 마. 네 대학문제도 염려하지 말고 진학을 하도록 해. 생활비는 엄마가 책임질 수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해.”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가요. 참견하지 마요.”
“그렇지 않아. 네가 아직 몰라서 그래. 우리 사회는 학벌이 낮으면 힘들어. 나중에 후회할 거야.”
그 애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아비 대신 생활을 책임지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 애의 당찬 생각에 놀랐지만 무엇을 해서 돈을 벌었는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마주 앉아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 경호의 마음을 돌려놓을 방법이 없었다.
경아를 불러 그간에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아빠가 경호를 때린 일이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왜 그를 때렸지, 그리고 언제였어?”
“엄마가 나가시고 자주 아빠는 오빠를 때렸어요. 학교를 결석하고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닌다고. 한번은 방학 때 오빠가 가출해서 아빠가 많이 속상해하시다가 잡아 와서는 때리고 가둔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는 아예 아빠하고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오빠도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어요.”
남편은 아일 폭력으로 다스리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 아이의 상실감은 아비에게 그렇게 반항하며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 현실을 비행으로 이탈한 것이었다. 이제는 대학 진학을 하기는 어렵게 되어버린 그 애를 나는 말로서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는 상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애를 잠자코 바라보며 인내해야 하는 일뿐이었다.
그 애가 저지르는 무책임에의 대가를 함께 치루며 참는 일, 고통스러움을 견디는 일뿐이었다.
경호는 여름방학을 끝으로 육 개월만 다니면 졸업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는 학교로 달려가 휴학 처리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했다.
나는 어디 가서도 가짜진단서를 만들 재주가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영민을 생각해냈다. 그래, 그를 찾아가자.
그를 안 만난지 육칠 년이 지났다.
이제 와서 이런 일로 그를 찾아가야 하는 일이 몹시 싫었지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가 그곳에서 살고 있을 리 없겠지만 그 옛날 그가 혼자 기거하던 집으로 갔다.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웅크리고 앉아 떨던 담은 온데간데없고 거대한 고층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있었다.
그를 찾을 길이 없었다. 굵은 프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 벤취에 우두커니 앉아 그 많은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쯤은 새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지도 모를 영민을 이런 구차한 부탁을 하기 위해 찾고 있는 나의 초라함이 구질구질했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문 하나를 간신히 열고 나가면 또다시 가로막혀있는 더 단단한 문.
삶은 늘 힘겹게 열어야 하는 닫힌 문처럼 답답하게 가슴을 조여 왔다.
어떡하나. 내가 책임져야 하는 세상에 내놓은 생명의 앞날을 도와주어야 하는 일인데...
나는 점심을 거른 허기를 느끼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월요일.
그가 근무하던 병원에 가보자. 어쩌면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경호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나는 그 애를 돌보지 않은 시간의 몇 곱절의 양으로 그 애 때문에 고통스러울 세월을 두려워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이 애들이 안정될 때까지는 나 자신의 학업은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계속 학업을 이어가야 하겠지만 벅차기만 했다.
인철은 올해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조카를 부양하며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을 때 그의 대학연구실로 찾아가면 되지만 그리움을 누르고 찾아가지 않았다.
공부하는 그에게 행여 방해될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그리움은 누르면 누를수록 그 팽창력이 가중되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나는 밤마다 그에게 편지처럼 시를 썼다.
내 사랑하는 마음이 어두운 밤 미풍처럼 그에게 가 닿기를 빌며 가슴 저린 언어들을 조심스레 토해냈다.
그리움을 이기기 위해 나는 시인이 되어 밤을 지새웠다.
영민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없었다.
다행히 그를 아는 직원이 있어 그가 옮겨간 대학병원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다시 그 병원으로 찾아갔지만 그는 수술 중이었다.
메모를 남기고 돌아온 저녁 나는 영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치 오래전 꾼 꿈처럼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그래요. 경남이, 부탁이 있어서 실례인 줄 알지만 찾아갔어요. 미안해요.”
그의 목소리는 놀람과 기쁨으로 들떠있었다.
다음날 그의 병원으로 다시 갔을 때 그는 막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미소 지으며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웃는 눈가에 옅은 주름과 이마 위로 히끗히끗 드러나는 몇 올의 흰 머리칼이 그동안의 흘러간 시간을 말해주었다. 이제 우리 나이도 불혹의 나이라는 사십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동차를 몰아 시내를 빠져나갔다.
그가 나와 하룻밤을 보낸 강가의 풍경도 많이 변해 있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내 손을 잡고 강물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사라진 저녁노을 끝의 붉은 하늘은 작고 고운 구름으로 가득 차 아직 아름다웠다.
그의 손의 축축한 땀이 내 손에 전해졌다.
그는 시선을 거두어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그 깊은 눈에 눈물을 어리었다.
어쩌면 이제는 그를 잊은 내 마음을 읽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진단서가 필요해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아들을 위해 진단서를 하나 해 달라고 왔어요. 자퇴한 아들을 휴학 처리하려면 필요해서요.”
그는 고개를 끄떡이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 너머로 잔잔히 흐르는 강물이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저 강물처럼 무심이 흐르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 다른 길에 서서 다시 만났다.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 잡았던 그를 떠내 보내고 대신 인철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나를 품고 있는지 그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슬아는...”
“응. 잘 있어. 중학생이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랑 살고 있어. 그 애가 날 돌봐줘.”
“다시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널 기다렸어. 네가 연락하길 늘 기다렸어.”
그는 내 존대말을 무시하고 그간의 세월을 문지르기라도 하는 듯 변함없는 친근함을 담아 말했다.
기다렸다고... 나도 당신을 간절히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아니 늘 당신을 기다리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의 갈색 구두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럴 수 없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경희가 간 후 설사 내가 그를 찾았다 해도 그의 딸 슬아는 결코 아빠를 내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린 그 아이에게서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희는 자기 대신 그를 사랑할 절대적인 존재를 남기고 말로는 내게 그를 사랑해주길 부탁하고 사라졌다. 그 애는 경희보다 더 간절한 영민의 사랑이었다.
“널 안고 싶어.”
나는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오래도록 사랑해온 그를 부인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통증이 나를 잠자코 침묵하게 했다.
그의 거친 숨결은 내 몸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냈던 아주 오래전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내 가슴에는 그리도 그립던 그 대신 인철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이어볼 수 없는 우리들의 시간을 감지하고 있을 뿐, 내게 있어 그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열정인 것을 감흥 없는 내 몸이 말하고 있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우리는 친구가 되어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네 친구로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을 이웃처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경호는 휴학 처리가 되고 몇 달이 지나 쌀쌀한 바람이 부는 춘삼월에 집에 왔다. 검은 양복을 입고 접근하기 어려운 어떤 불길한 예감을 풍기며 들어섰다. 나는 그 애에게 학교는 휴학 처리 되었다고 말했다. 언제고 복학하여 졸업하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애가 내미는 돈 봉투를 받지 않았다.
네가 한 행위에 대해서 언제고 너는 책임을 져야 하는 대가를 치룰 것이다. 내가 지금 네게 대가를 치루고 있듯이...
“집을 옮기세요. 전세로. 그리고 저는 군대에 갈 겁니다. 갔다 와서 연락할게요.”
“편지해.”
나는 서둘러 집 주소와 내 직장전화번호를 적어 그 애에게 내밀었다.
그 애는 동생을 한번 흘낏 쳐다보고는 일어섰다.
“경호야, 저녁 먹고 가.”
그 애가 문을 닫는 소리가 내 말꼬리를 잘랐다.
나는 가슴을 후려치는 강한 통증을 느끼며 그 애가 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경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위안하듯 불렀다.
“엄마”
그 애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 나타나 이렇게 사라지는 걸까?
어미인 나는 이렇게 그 애에게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는가?
나는 너희들에게 당당한 어미이고 싶었다. 불행한 삶에 굴복하는 그런 무력한 인간인 것이 참을 수 없어서 그렇게 애쓰고 애써서 이 자리까지 왔지만 나는 여전히 무력했다.
네게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어미에게, 네가 내리는 형벌이 다시 너에게 돌아가지 않기만을 빈다.
삶은 내 손을 떠나간 부메랑이 다시 날 향해 돌아오는 그런 업인 것을 네가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추운 겨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숲속의 작은 새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 미물의 본능적인 생명력은 절망감에 빠지는 내게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이 신의 축복이었음을 깨닫는 나의 날갯짓을 위해 펜을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 그들에게 전하는 언어들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끝 (2013.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