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여사는 일상화된 배신에 길들여져 간다.
아들은 정신적 미숙아지만 그녀 역시 그를 포용할 만한 정신적 능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제 아침 일만 해도 그렇다.
이십 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에서 세 사는 일은 여러 가지 돌발적인 사소한 문제들을 겪어야 한다. 전날 늦게까지 TV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잠들은 그녀는 아홉 시가 돼서야 일어났다.
FM 클래식 음악방송 스위치를 누르고 늘 하듯이 거실로 나가 뒤 베란다 세탁기 위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들의 방을 환기하려고 창문을 여는 순간 짜증 섞인 ‘아!’ 하는 소리에 얼른 창문을 다시 닫았다.
“미안해. 나간줄 알았어!”
어젯밤 몇 시에 잤는지 알 수 없지만 아들은 그 시간까지 자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새벽 다섯 시 전에 일하러 나가는 것만 생각했다. 그 시간에 나간다고 종일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일이 세시 경 끝나니까 네다섯 시면 집에 돌아온다. 그러면 씻고는 바로 잠을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난다. 때론 불을 켜놓고 아침까지 잘 때도 있다. 불을 끄고 자라고 몇 번을 말해도 번번이 그녀가 불을 꺼주곤 한다.
나흘 일하고 이틀 쉬는, 급료가 낮은 게 당연한 단순노동 직장이다.
그녀는 요즘 들어 자주 조금 전의 일을 깜박 잊곤 한다. 퇴행성 노화의 일부분일 것이다. 아들이 어제 분명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말한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그녀 역시 삼십 대에는 휴일이면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면서 늘 충분히 잘 수 없었다. 그러나 휴일이면 실컷 자도 되는 안정된 직장생활을 했던 그녀와 지금의 아들은 경우가 다르다.
올해로 사 년째 공무원 시험공부에 매달려 있는 아들은 가족으로서의 집안일을 소홀히 해도 되는 구실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자 친구를 포함한 친구들 만나는 일, 그 외에 다른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하면서 말이다. 보다 못한 그녀가 오죽하면 ‘그 앤 시험공부를 취미로 해. 술 먹고 쓸데없이 나다니는 것보다야 낫지.’ 아들의 안부를 묻는 지인에게 그리 말한다.
“그만 일어나지. 아홉시 넘었는데...”
선여사는 혼자 말처럼 말하며 아침 식사를 차린다.
“열 시에 일어날 거예요.”
방문이 닫힌 채 아들이 말한다. 순간 그녀는 노여움이 치밀었다.
“어차피 잠이 깼으면 일어나지 뭘 더 잔다고...”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식탁에 음식을 놓았다.
늘 하듯이 신문을 읽으며 혼자 식사했다.
아들은 십여 년 헤어져 사는 동안 아침을 안 먹고 다닌 습관 때문인지 함께 살면서 아침밥 먹는 일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조금 더 자는 쪽이 좋다는 아들과 타협하고 말았다. 그녀 역시 젊은 시절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는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출근하는 쪽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 년째 시험에 떨어지면서 아홉 시까지 잠이 오냐?”
그녀는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한마디 더 중얼거렸다.
아들은 젊어서인지 귀가 아주 밝았다. 더 잠자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문을 열고 나온다.
평소와 달리, 잠이 덜 깬 아들의 부스스한 얼굴은 이상스레 바보스러워 보인다. 그건 헤어진 아비에게서 느꼈던 안 좋은 감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수돗물이 끊어지려고 해. 어제 공고도 없었는데... 세수만 얼른 해.”
그녀는 친절하게 일러준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여느 때와 달리 물이 졸졸 나왔기 때문이다.
아들은 뒤 베란다에 있는 온수용 콘세트를 꼽고 안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들이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건, 그가 사용하고 난 화장실을 반드시 그녀가 뒷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다. 샤워하고 난 뒤 하수구나 세면대에 허옇게 떼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는 건 불쾌했다. 도대체 그 잔여물을 왜 물로 닦아내지 않고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속 잔소리해도 고쳐지지 않자 화장실을 분리해서 사용하기로 타협했다. 혹시라도 내가 미처 치우지 못했을 때 아는 이라도 왔다가 가뜩이나 낡은 집이 더럽기까지 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건 정말 싫었다.
아랫동네 사는 어린 친구가 가끔 놀러 온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언제든지 집을 개방한다. 그러나 그 취지가 무색하게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돌아와 발을 씻기기 위해 욕조가 없는, 아들이 사용하는 서재용 안방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기분이 상했다.
투덜거리면서 청소하고는 저녁때 오면 좋게 타이르기를 여러 번 하였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더럽게 화장실과 방을 사용하면서 외출할 때는 여자애들 분단장하듯이 깔끔하게 차리고 나가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그 가식을 일깨워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올여름 열대아로 무더운 여름에도 온수를 트는 아들이 밉쌀스러운 나머지 샤워를 하는데 콘세트를 뽑아버렸다.
아들로서는 그야말로 설움과 핍박의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파트가 중앙난방에서 개인 난방으로 바꾸고 난 후 가스요금이 훨씬 더 많이 나왔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는 가스보일러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요금이 일차적 절약의 목적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가는 생활 습관에 대한 반성이 이차적 목적이었다.
그녀를 포함하여, 모든 생활물자를 펑펑 써대는 현대인의 습관에 대한 자책이 깔려 있었다. 나중에야 어찌 되던, 남이야 어찌 되던 나만 편하면 된다는 무사안일함 속에서 살아가는 건 편안함 못지않은 심적 불편함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여기저기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적은 급료에 학자금 빚과 적은 액수지만 대출까지 안고 있는 아들의 안일한 생활 습관은 그녀의 분통을 수시로 터트리고 폭언을 날리게까지 했다. 귀 밑머리에 비누칠이 남은 아들이 거실로 뛰쳐나오며 물었다.
“물이 안 나오네! 관리실 전화번호 아세요?”
“관리실 전화번호 아나마나야. 그러게 세수만 하라고 했는데, 왜 내 말을 안 들어?”
아들이 런닝 바람으로 현관문을 여는 것을 보고 그녀는 소리쳤다.
“아니, 쟤가 옷도 안 입고 어딜 나가? 미쳤어!”
아들이 화가 나서 관리실로 뛰어가는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에 공고도 안 붙었잖아. 나쁜 놈들!”
잠깐 현관문 옆 엘리베이터 속만 들여다보고 들어온 아들에게 놀란 그녀는 얼른 관리실 전화번호를 찾아 건넸다.
전화를 거는 아들의 목소리가 급공손하다. 그의 변함없는 장점이자 미덕이다. 정화조 보수공사를 해서 낮 한 시까지 물이 안 나온다고 한다.
“그 사람들도 갑자기 일어난 사고니까 공고를 못 부쳤겠지. 그럴 수도 있잖아.”
“난 물 안 나오는 것보다 엄마 잔소리가 더 짜증 나! 에이!”
아들의 삼천포로 빠진 이 한마디에 그녀의 머리꼭지가 열린다.
“넌 뭐든지 수틀리면 내 탓이냐? 내가 만만한 동네북이야? 엄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냐구!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니? 그렇게 잔소리 듣기 싫으면 나가 살면 되잖아!”
그동안 그녀는 아들에게 제 발로 나가겠다고 할 때까지 다시는 나가 살라는 말은 안 하려고 수없이 마음먹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내밷고 말았다.
입맛이 싹 사라진 그녀는 베란다에 나가 울긋불긋 곱게 물드는 산을 바라보며 심호흡하였다. 보통 모자간이라면 대수롭지 않을 일상적인 대화지만 깊은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선여사는 아들과 헤어져 산 시간과 비슷한 십일 년을 뒤늦게 함께 살고 있다.
열한 살에 헤어진 후 보고 싶어 눈물로 점철된 십여 년의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은, 아니 오히려 절절한 그리움을 말끔히 문질러버리고 온갖 얼룩으로 더럽힌 세월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시간을 후회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내린 선택을 어찌 후회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주 잘한 일이어야만 했다. 적어도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을 아비에게 보내면서 약속했다.
“우린 헤어지는 거 아냐. 엄마가 시골로 발령받아 가서 잠시 헤어져 사는 거야.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너 보러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아들을 만나러 가곤 했다.
그녀에게 인생은 연극무대 같았다. 여러 가지 역할을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만 했다.
맘에 들지 않는 역할도 꼭 맘에 드는 주인공처럼 열정을 다해 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배우였다.
그녀의 땀과 눈물과 사랑의 실들로 한 올 한 올 짜 내려가는 문양 고운 양탄자처럼 최선을 다해 그 역할들을 해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후회도 미련도 없이 무대를 내려오는 최고의 광대이기를 희망했다.
아들은 군 제대를 하고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물론 그전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니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도움이 아니라 아주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입장에서 보면 그 당연한 일들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들의 아비가 아닌 다른 사내와 살면서 그의 자식을 낳아주지 못한 처지로서는 그녀의 아들이라는 존재는 남편에게 지극히 불편한 존재였다.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아들의 아비였지만 그는 그들 곁에 없다는 이유로 단순히 사면되었다. 아들은 사라지고 없는 아비를 원망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몫까지 어미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 곁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그의 몫까지 이중으로 보상해야 했다.
이중 보상 아니라 삼중, 사중 아니 그보다 더한 보상이라도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어미였다. 그러나 세상만사에는 명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는 자식을 위해 내 굽어지는 등허리를 계속 내줄 수는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나도 정상적인 가정에서 탈 없이 자랐으면 지금 같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는 원 없이 살았지만 나는 부모 혜택을 받지 못했어요. 내 곁에 있는 애들 결혼하는 거 보면 부모들 경제력 순서대로 하더라구요.”
뭐라고! 그녀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녀를 비롯한 형제들은 부모에게 재산이라고는 한 푼도 받지 못했지만 모두 제힘으로 벌어서 가정을 잘만 꾸렸다.
그녀는 이혼하고 제힘으로 키우려던 아들을 재혼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못해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비에게 데리고 갔다.
그때 아비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또한 경제력이 있었던 조부모님은 흔쾌히 가엾은 손주를 받아들이셨다.
아들의 아비는 이 년간 만나지 못했던 아들을 잠시나마 사랑해주었다. 그러나 곧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서 동생을 낳게 되고 아들을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들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 모두를 지겨워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니, 아비는 정관수술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젊은 아내는 줄줄이 아이를 낳는 게 당연했다. 그녀는 피임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그녀와 살 때도 몸이 허약한 그녀가 피임약을 먹고 일어나는 구토 증세 때문에 그에게 수술하기를 권했지만 그는 알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관 수술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장거리 통근을 하면서 몹시 힘들었다. 약 대신 생리주기에 맞추었던 피임의 실패로 아이를 지우는 고초까지 겪으며 진저리를 쳤다. 다시는 그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그녀는 반영구성 루프를 시술하였다. 그래서인지 재혼하면서 그 루프를 제거했지만 난관에 유착이 일어나서 자궁외임신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영영 아이를 갖을 수 없는, 이 생각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그녀는 좌절했다.
얼굴이 곱상한 담당 의사는‘시험관 아기’라는 방법이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자는 임신 확률이 더 높다면서 미소까지 지었다. 그러나 다섯 번이나 이어진 시험관 아기 시술의 거듭되는 실패는 피를 말리는 고통을 부여했다. 이렇듯 삶에는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전남편의 늙은 부모님은 그들 모두를 먹이고 입히며 거두었다.
그는 그녀와 헤어진 후 이 년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또 바람질을 하다가, 아니 바람질을 하다 직장을 그만두게 된 건지 그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급기야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일찍이 무책임한 그를 경험한지라 그녀의 아들이 행여 아비를 닮았을까 노심초사하였다. 그 당연한 이치의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생활을 잘하던 아들은 그녀와 헤어져 살면서 중고교 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국·영·수 과목의 중요성을 누누이 언급하며 보충 공부를 권하였지만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이제 오지 마세요. 엄마 만나는 거, 아빠가 싫어해요.”
그녀는 잠깐 만난 아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마음 아파 눈물을 훔치며 한숨 쉬었다.
그 후 대학입시 원서를 세 군데 넣은 대학 중 경북 구미시 금오공대까지 운전해 갔다. 그녀는 처음으로 장거리 고속 주행을 하였다.
아들 앞이라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그녀 차를 무서운 속도로 지나치는 중대형 차들은 경차를 심하게 흔들며 불안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가 없는 탓에 주말이면 수시로 야외로 놀러 나갔던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운전해주기를 거부했다.
“당신도 운전하잖아. 당신 아들인데 직접 운전하고 가.”
그녀는 그때 무정한 남편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 자식을 낳지 못한 것도 은근히 부아가 날 텐데 전남편의 장성한 자식 뒷바라지를 한다는 게 싫었을 것이다.
옛말에 아내가 고우면 아내 친정 기둥뿌리에도 절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한때는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을 만큼 열정적이던 사랑도 늘 한결같을 수는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들은 세 군데 대학에 모두 합격해서 서울 산업 공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듯이 대학 일 년이란 입시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는 시기였다. 아들도 음악동아리다 학내 시위다 몰려다니며 학업을 소홀했다. 그의 아비가 그녀를 따라다니며 허비한 시간처럼...
그러더니 학교를 때려치우고 종적을 감춘 아비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아이들을 넷이나 낳은 아비는 연로한 부모님께 제 식구들을 떠넘기고 사라졌다. 그때 아들은 자신이 왜 아비를 찾아다니는지 알기나 했을까. 조부모님의 심려를 덜어드리려고 그랬을까? 아니면 책임을 벗어버리고 달아난 아비를 단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한 번 미루었던 군입대를 하면서 그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가 끝까지 함께 살지 않은 아들의 아비가 대형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와 헤어져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의 시각에서 본 충격요법이었지 그에게는 소용없는, 아니 그녀를 향한 증오심만 키우고 정신적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 일이 되고 말았다.
증오심이란 그가 아들과 그녀 사이를 이간질하는 언행에서 알 수 있었다.
“자식을 낳지 못하니까 널 필요로 할 뿐이야. 널 버리고 다른 놈한테 시집갔으면 그만이지 만나서 뭐 해.”
그녀를 만나러 나오는 것이 눈치보여서인지 사춘기 반항심에서였는지 아들은 그렇게 아비의 말을 전했다.
“좋은 씨를 받아야 해. 호박이 수박 될 수 없는 일이야, 난 어리석게도 그걸 몰랐어.”
결혼을 앞둔 젊은 친구들에게 그녀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물론 세상은 호박도 수박도 모두 필요하다. 단 내가 수박을 원한다면 수박씨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녀는 때때로 진저리치며 헤어진 첫 남편과 다시 살고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진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선함이란 악함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녀는 어리고 착해서 첫 남자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서 남자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아니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하니 누구와 살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그녀의 인내심 부족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옛날 그녀의 조부모님 시절에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시집가서도 애 낳고 잘만 살지 않았던가! 무조건 그 집 귀신이 될 때까지 기어코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기 쓰고 공부하는 그녀를 대견해하셨다.
그녀는 몹시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못 배운 한을 대신 풀어드렸다. 그리고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 건 그녀의 성격 탓이겠지만 그래도 교육받은 덕에 안정된 직장을 가진 덕분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두 번째 단추도 잘못 끼운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뭐 인생이 단추 끼우기냐고? 그건 세상살이에 미숙한 그녀가 살면서 겪은 시행착오였다. 누구나 여러 가지 형태의 시행착오를 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그녀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일까 회의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고심했다. 그 행위에 손익 계산 이전에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 신념은 손익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혼과 결혼, 또 이혼을 반복하고 지금은 곧 중년이 될 아들을 보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녀 입장에서 생각하는 보호에 불과하지만...
행여 그가 신용불량자라도 될까 봐, 병이라도 날까 봐 내보내지 못하고 함께 산다. 비단 아들뿐 아니라 그녀를 포함하여 물자가 흔한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이 소비를 절제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빚을 내서라도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하고 누리고 싶은 것을 누려야 한다. 세상은 오로지 소비하는 자유만을 부추기며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무관심하도록 쉴 새 없이 진종일 가는 곳마다 광고로 떡을 치고 있다. 도무지 정신 차려 자신의 상황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그녀는 남편을 외면했듯이 자식을 외면하지는 못한다. 매일 좌절을 거듭하며 옥신각신한다.
다음 날 새벽 아들은 신문을 현관에 들여놓고 출근했다.
그 사소한 행위 하나도 다정하게 느껴질 만큼 그녀는 아들에게 소외된 채 진종일 혼자 지낸다. 아들의 애정을 기대하지 못하는 그녀는 스스로 여러 가지 일을 찾아 분주하게 바쁜 시간을 보낸다.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익히 경험했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그 ‘잘 산다’는 정도와 의미가 제각각이겠지만 그녀는 이제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도 행복할 줄 안다. 그간에 겪은 쓰라린 풍랑들은 그녀를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인간으로 바꾸었다.
가끔 밤이면 공부 대신 야동에 심취해있는 아들, 그것도 모자라 때론 잠 안 자고 게임까지 하는 아들을 보면서 기가 딱 막힌다. 그래도 남자들이란 생물학적 존재들을 경험한 어미인지라 그의 나이를 생각하며 오히려 측은한 마음까지 일어난다. 애인을 두고도 자위행위로 그야말로 초라한? 아니면 편리한? 삶을 자위하는 그에게 동정심이 이는 건 물론이고, 팔 년 넘게 사귄 아들의 심지 깊은 여자 친구에게 은근히 서운함이 느껴질 지경에 이른다.
팔이 안으로 굽는 어미이다. 삼십 중반이 넘어도 제 가정을 꾸릴 생각 하지 않고 그저 틈틈이 그녀와 히히덕거리는 아들은 나이만 어른이지 철모르는 애였다.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 나누다 각자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는데 지켜보는 그녀가 다 진력이 날 정도이다.
그녀의 오빠는 볼 때마다 아들을 결혼시키라고 성화이다. 그래야 책임감을 느끼고 정신 차려 산다고. 그건 오빠의 경우이다.
내가 어릴 적 알던 오빠는 다른 형제에 비해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고 반발심이 강해 걱정을 끼치던 청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청룡부대로 월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어머니와 큰오빠는 일 년 내내 새벽기도를 다니며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 겨울 큰오빠의 귀는 새빨갛게 동상이 다 걸렸다. 그것도 모자라 본의 아니게 실연한 후 원양어선까지 타고 외국을 몇 년 떠돌다 돌아왔다.
그런 그가 결혼한 후에는 그야말로 백팔십도 변하여 모범적인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자식이 무섭기 무서운 모양이다.
‘나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먹고 놀러 다니고 싶지. 그렇지만 적은 월급으로 나 하고 싶은대로 다하고는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가 없어.’
철든 작은오빠가 언젠가 지나가는 말처럼 하던 말이다. 그는 참고 고생한 보람이 있어 자식 둘을 잘 교육시키고 짝까지 잘 맞춰 시집 장가 보낸 복된 사람이 되었다. 비록 이제 아내와 각방을 쓰는 것이 못마땅해 투덜거리긴 하지만...
선여사는 아들이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잘난 아들이었다면 벌써 그녀 곁을 떠나 제 아내에게 충성하며 살았을 것이다. 요즘은 심한 말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모셔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그녀가 손주들 치다꺼리를 하지 않고 살게 해주어 고맙기까지 하다.
그녀의 아들이 효성스러워서가 아니라 그녀의 도움이 필요해서 함께 산다.
혼자 살아야 하는 그녀로서는 적적하지 않아 좋은 일이라고 위안한다. 만약 남과 그렇게 자주 다툰다면 어떻게 함께 살겠냐마는 그래도 부모 자식이라 미운 정 고운 정 드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녀 좋자고 그를 붙들고 있는 건 아니다. 아들이 올 때부터 그녀는 아들과 이렇게 오래 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시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 가겠다는 아들이 학원 종합반을 다니며 여자 친구를 사귈 때 대학만 졸업하면 나가 살 줄 알았다.
정신 못 차리는 아들에게 어찌나 실망스러운지 차라리 보지 않고 싶어 그가 어서 나가 살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독립할 의지도 형편도 되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며 생각만 이상적이었다.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이상이란 허황된 독버섯처럼 색깔만 고울 뿐 치명적이다. 그는 어미 눈에는 보이는데 제 눈에만 보이지 않는 안개 낀 길을 무작정 걸어간다.
“인생에는 차선이라는 게 있잖아. 벽이 가로막고 있으면 돌아갈 줄 알아야지.”
두 해째 시험에 떨어지자 아들에게 말했다.
삼십 중반에 일을 그만두고 시험공부만 하겠다고 아침이면 대학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들은 그녀를 어이없게 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아들은 집중력이 부족했다. 그의 정돈되지 못한 방처럼 산만한 생활 습관이 그것을 말해준다.
번번이 사소하지만 고쳐야 할 생활 습관을 주의 주다가 말꼬리를 물고 번져가는 다툼은 급기야는 심중에 깊이 자리 잡은 서로의 상처를 들쑤셨다.
“누가 낳아달라고 했어요? 두 사람이 좋아서 낳은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죽을 때까지 너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니? 내가 정말 몰라서 낳았다. 지금이라도 도로 넣을 수만 있다면 널 넣어버리고 싶어. 널 가진 책임을 지려고 네 아빠와 결혼했고, 또 널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까지 했잖아. 네가 제대로 잘했으면 너도 나도 문제가 없었을 거 아냐.”
이제와 따져 무얼 하겠는가마는 분명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럼 어머니가 선생님과 헤어진 게 나 때문이란 말이예요? 그때는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고추장을 찍어 먹어 보아야만 고추장인 줄 안단 말인가. 그럼 세상의 어느 어미가 위기에 처해 손 벌리는 아들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때 아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내가 보기에 분명 위기였다. 다시 대학 가기 위해 수능 공부 한다는 아들이 삼촌과 동거하는 여자의 룸싸롱에서 온갖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학원비만 대주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냉정하게 관여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을 몇 년째 하며 시간을 보내는 아들이 언젠가 ‘차라리 그때 그냥 두지 그랬어요?’라고 말할 때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마음이 아팠다.
물에 빠진 놈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란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나 격언들은 놀랍게도 하나같이 꼭 들어맞는 말들이었다. 도대체 어떤 다른 방법으로 대처할 도리가 없는 그녀는 막막함을 지우며 말했다.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헤어지는 게 좋겠어. 이제 엄마도 할 만큼 했으니 독립해서 네 힘으로 살아보도록 해.”
나는 그에게 꼭 필요한 짐들을 자동차에 싣고 그가 얻었다는 대학동 고시촌 건물로 갔다. 방은 책상 하나에 드러누우면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만큼 작았다.
그녀가 스물두 살 되던 해 지방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할 때 큰오빠가 덩그러니 이불 보따리 하나를 던져주고 갔던 썰렁한 방보다도 더 작았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공동으로 써요. 빨래는 빨래방에 가서 하던지 집에 갈 때 가져가서 하면 돼요.”
아들은 돌아서는 그녀를 따라 나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보지 않으면 어찌하고 살든 참견하지 않아도 되니 서로 마음이 편할 거다. 그러나 자동차 시동을 걸자 고정채널 FM 방송에서 나오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아리아 ‘프로방스 내 고향으로’의 절절한 멜로디는 그녀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혼자 저녁밥을 먹으며, 또 청소할 때도 수시로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은 툭하면 미루긴 했지만 열흘에 한 번 정도 청소를 해주곤 했었다. 무릎 꿇고 하는 걸레질이 힘들다며 걸레질 기계를 사자고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응했다. 이제는 내가 그 기계를 밀면서 무릎 대신 팔이 아팠다.
결혼해서 자연스럽게 나갔다면 홀가분했을 텐데, 서로를 필요로 하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허망한 회의가 일어났다.
“무자식 상팔자야. 자긴 참 편하겠어.”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이혼까지 하고 혼자 사는, 아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온 후배가 근황을 묻기에 아들과 헤어진 경위를 이야기하였다.
“선배, 속 썩이는 자식이라도 없는 거보다는 있는 게 나아요. 나는 세상에 태어난 값을 못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무슨, 삼십여 년이나 애들을 가르쳤는데, 배 아파 낳아야만 자식인가. 그만하면 충분해. ”
이혼의 아픔을 거두고 삶을 의연하게 꾸려가는 후배인지라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다. 그녀는 자식 없는 그녀에게 괜한 소리를 한 거 같아 민망했다. 그녀 역시 아들을 낳아보지 않았다면 여자로 태어나서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그로 인한 고통을 알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들이 독립하고 꼭 한 달이 되는 주말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불러 저녁 식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차에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죄송한데, 저 다시 들어가 함께 살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정서적으로 고립되어있는 기분이 들어 울적해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가 봐요.”
할머니의 생신이 겹친 지난 명절 때도 아들에게 한 번 가뵙기를 권했지만 그는 시험에 붙으면 가뵙겠다며 미루었다. 해마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던 할머니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아들이 열한 살 때부터 십 년 동안 돌보아주신 내게도 고마운 분이셨다. 그 일로 아들은 몹시 자책이 된 듯 우울한 기분을 전해왔다.
“알았어. 오늘 저녁 함께 먹자.”
그녀는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 구이를 준비하고 반찬을 만들었다.
함께 살던 강아지는 그동안 보지 못한 아들을 보자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난리 부르스를 추었다. 아들은 현관에 주저앉아 강아지를 얼싸안고 볼을 부비며 잠시 일어날 줄 몰랐다.
저녁상을 치운 후 그녀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밖에서 살 때 집주인에게 내던 주거비를 내게 준다면 들어와도 좋아.”
“그럴게요. 남 주느니 어머니 드리는 게 낫지.”
아들은 한 방 먹었다는 듯 웃으며 선선히 말했다.
그녀는 아들이 오면 주려고 사놓았던 예쁘게 포장한 셔츠와 새 가방을 내놓았다.
“자, 생일선물 미리 줄게.”
자신이 누리고 싶은 자유에 대한 책임을 인식시키고 싶은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아들이 고마웠다.
그렇게 이 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다시 나가 살 마음이 없는지 다투어도 나가 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 또한 다시 언급하지 않고 예전보다 더 많이, 참기 어려운 일상들에 대하여 인내한다.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자식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배부른 소리일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이다. 그것이 생명 지닌 모든 존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 사랑으로 잉태했던 순간의 희열을 떠올린다.
신비스러운 생명의 탄생을 경험하게 해준 아들, 그녀가 느꼈던 어린 시절 사랑스러운 아들을 잊지 못한다.
퇴근해 들어오면서 ‘다녀왔습니다’ 말하는 아들의 미소 띤 얼굴과 목소리에서 삶, 그 어쩔 수 없는 희망을 다시금 다정하게 품어 안는다.
- 끝 - (2014.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