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 썸네일형 리스트형 삶, 그 희망에 관한 변설 선여사는 일상화된 배신에 길들여져 간다. 아들은 정신적 미숙아지만 그녀 역시 그를 포용할 만한 정신적 능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제 아침 일만 해도 그렇다. 이십 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에서 세 사는 일은 여러 가지 돌발적인 사소한 문제들을 겪어야 한다. 전날 늦게까지 TV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잠들은 그녀는 아홉 시가 돼서야 일어났다. FM 클래식 음악방송 스위치를 누르고 늘 하듯이 거실로 나가 뒤 베란다 세탁기 위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들의 방을 환기하려고 창문을 여는 순간 짜증 섞인 ‘아!’ 하는 소리에 얼른 창문을 다시 닫았다.“미안해. 나간줄 알았어!”어젯밤 몇 시에 잤는지 알 수 없지만 아들은 그 시간까지 자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새벽 다섯 시 전에 일하러 나가는 것만 생각했다. .. 바람의 연정 은향은 30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늘 갑갑함을 느꼈다.그래도 일기를 쓰면서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그래서 자신을 ‘바람’이라 칭했다. 어디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마치 땅속에 박힌 식물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는 그녀는 일기를 쓰는 밤이면 이 세상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주변머리 없는 자기 성격에 진력이 나서 여행에 관한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이곳저곳 발을 디디며 돌아다니다 달콤한 잠에 빠져들곤 하였다. 퇴직하면 가보고 싶은 곳들을 순서대로 빼곡하게 적어놓았다. 그곳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랑 먹어보고 싶은 음식까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을 읽고는 체코를 여행해보고 싶었다.탱크가 밀고 들어오던 프라하의 거리를 가보고 싶었다. 연인들.. 낡고 오래된 기억 속으로 · 서영은 석가의 금강경 경전을 해설하는 법문을 배우고 이토록 다사다난한 삶이 허상인 것을 깨달았다.작은 책자에 압축된 ‘보르헤스의 불교강의’는 완벽하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다시 읽어보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별 볼 일 없는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아주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버린 시간을 하루하루 꺼내며 그리운 존재들을 만나는 시간여행을 떠났다. 1. 서울시 용산구 신흥동 산 2번지 7통 1반 나는 1953년 따스한 봄날 아침녁, 서울시 용산구 신흥동 산 2번지 7통 1반에서 태어났다. 6·25 사변과 함께 굶주림이 끝나갈 무렵 사십세 된 늙은 어머니는 어렵사리 쌍둥이 딸을 낳았다. 산파는 시어머니뿐 이미 여덟 번째 경험으로 치루는 출산이었다... 이전 1 2 3 4 다음